본문 바로가기
여행

커뮤니티 투어리즘이란? 주민이 주도하는 여행이 지역을 바꾸는 방법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4. 12.

대규모 자본과 외부 기업이 주도하는 기존 관광 개발 방식은 지역 주민을 관광 산업의 '배경'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 이익은 외부로 유출되고, 문화는 상품화되며, 지역 공동체는 오히려 소외되는 역설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커뮤니티 투어리즘(CBT)입니다.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며 수익을 배분하는 이 새로운 여행 모델은, 단순한 관광 방식의 변화를 넘어 지역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1. 커뮤니티 투어리즘의 개념과 정의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지역 주민이 관광 자원의 소유자이자 운영 주체로서 직접 참여하는 관광 형태를 의미합니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이를 "지역 공동체가 관광 계획, 개발, 관리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관광에서 발생하는 편익의 상당 부분이 지역 내에 남는 관광"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매스 투어리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의사결정 권한에 있습니다. 일반 관광 개발에서는 외부 자본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상품을 설계하고 주민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무릅니다. 반면 커뮤니티 투어리즘에서는 주민 스스로가 어떤 관광 자원을 어떻게 보여줄지,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결정합니다. 이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선 자기결정권의 실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커뮤니티 투어리즘의 핵심은 "관광을 위한 지역"이 아니라 "지역을 위한 관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여행자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지역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참여자가 됩니다.

이 개념은 1980년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생계 수단으로 처음 시도되었으며, 이후 아시아·유럽 농촌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빈곤 완화 수단을 넘어 문화 보전, 환경 보호, 공동체 회복력 강화 등 다차원적 목표를 추구하는 모델로 진화하였습니다.

 

2. 커뮤니티 투어리즘의 핵심 원칙

커뮤니티 투어리즘이 다른 관광 형태와 구별되는 데에는 다음의 네 가지 핵심 원칙이 작동합니다.

① 주민 주도성

관광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운영, 수익 배분까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됩니다. 외부 전문가나 행정 기관은 지원자 역할에 머물며, 의사결정의 중심은 항상 공동체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민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등의 조직 형태가 활용됩니다.

② 편익의 지역 내 순환

관광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순환되도록 설계됩니다. 숙박, 식사, 체험 프로그램 모두 지역 주민이 직접 운영하며, 수익의 일부는 공동체 기금으로 적립되어 공공시설 유지, 장학금, 노인 돌봄 등 마을 전체의 복지로 환원됩니다.

③ 문화 및 환경의 진정성

지역 고유의 문화, 언어, 음식, 생활 방식이 관광 자원의 핵심이 됩니다. 상업화를 위한 과장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지역성을 공유하며, 이 과정에서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되찾게 됩니다. 환경적으로는 수용 가능한 방문객 수를 스스로 결정하는 '방문자 관리' 원칙을 적용합니다.

④ 상호 학습과 교류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단방향적 소비가 아니라 여행자와 지역 주민 사이의 진정한 교류를 지향합니다. 여행자는 지역 문화를 배우고, 주민은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지역 공동체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3. 국내외 주요 사례 분석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성공 모델을 축적해 왔습니다. 아래는 특히 주목할 만한 대표 사례들입니다.

▶ 해외 사례 · 태국

치앙라이 빠이 강 유역 공동체 관광 - 태국 북부 소수민족 마을들이 연합하여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홈스테이, 트레킹, 전통 직조 체험으로 구성됩니다. 마을 협의회가 직접 방문자 수를 제한하고 수익의 30%를 공동체 기금으로 운영하며, 덕분에 산림 훼손 없이 연 2,000명 이상의 방문자를 수용하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구축하였습니다.

▶ 해외 사례 · 르완다

고릴라 가디언즈 빌리지 - 르완다 무산제 지역에서 전직 밀렵꾼이었던 주민들이 야생동물 보호 가이드로 전환한 사례입니다. 관광 수익의 10%는 지역 공동체로 직접 귀속되며, 주민들은 이를 통해 자녀 교육,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모델은 유엔환경계획(UNEP)이 '자연 기반 해결책(NbS)'의 우수 사례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 국내 사례 · 전남

신안군 퍼플섬: 마을 주도 브랜딩 - 전라남도 신안군 반월·박지도는 주민들이 직접 보라색 테마를 기획하고 실행한 커뮤니티 주도 관광의 국내 사례입니다. 주민들이 건물, 의복, 식물 등 모든 요소를 보라색으로 통일하고 직접 관광객을 안내하면서, 연간 방문객 수가 10만 명 이상으로 급증하였습니다. 수익은 마을 발전 기금으로 운영됩니다.

▶ 국내 사례 · 경북

안동 하회마을 주민 해설 프로그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에서 마을 주민이 직접 해설사로 참여하는 '주민 해설 투어'가 운영됩니다. 외부 여행사 의존도를 줄이고, 주민 중심의 수익 구조를 형성한 성공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참여 주민들의 문화 자긍심 향상과 함께 마을 공동체 결속력도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4.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효과

커뮤니티 투어리즘의 효과는 단순한 관광 수입 증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학술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다층적 효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수익의 지역 내 잔류율이 일반 패키지 관광(약 20%)에 비해 현저히 높습니다. 세계관광기구 연구에 따르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CBT 프로그램의 경우 관광 수익의 60~80%가 지역 내에서 재순환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지역 내 고용 창출, 농산물 소비 증가, 지역 화폐 활성화 등으로 이어지는 승수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 사회·문화적 효과

주민들이 자신의 문화를 직접 설명하고 공유하는 경험은 지역 정체성 회복과 문화적 자긍심 향상에 직결됩니다. 특히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기술이나 언어가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되살아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됩니다. 또한 청년들이 지역에 돌아와 관광 기획자, 디지털 마케터, 해설사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인구 유출 문제 해소에도 기여합니다.

▶ 환경적 효과

주민 스스로가 관광지의 주인이 되면, 환경 보호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강해집니다. 방문자 수를 스스로 제한하고, 쓰레기 처리와 생태 자원 보호를 직접 관리하는 '자치적 환경 거버넌스'가 형성됩니다. 이는 외부 규제에 의존하지 않는 내부 지속가능성의 원동력이 됩니다.

 

5. 과제와 한계, 그리고 극복 방안

커뮤니티 투어리즘이 모든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역량 격차: 마케팅, 외국어 대응, 디지털 플랫폼 운영 등 관광 운영에 필요한 역량이 지역 주민에게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으로 보완이 가능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 공동체 내 갈등: 수익 배분을 둘러싼 내부 갈등,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참여 의지의 불균등 등이 공동체 운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투명한 거버넌스 구조와 명확한 의사결정 절차가 필수적입니다.
  • 상업화 압력: 성공적인 CBT 프로그램은 외부 자본의 투자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주도성이 희석되고, 결국 기존의 상업 관광과 다를 바 없어지는 '그린워싱' 위험이 존재합니다.
  • 계절성 및 수익 변동성: 농촌·자연 기반 CBT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편차가 크며, 이로 인한 수익 불안정이 지속적인 참여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복수의 관광 상품 개발과 연간 프로그램 설계가 필요합니다.
  • 행정적 지원 부재: 한국의 경우 CBT 관련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여,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등록할 때 복잡한 행정 절차와 불명확한 법적 지위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6. 한국에서의 가능성과 정책적 시사점

한국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약 절반이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한 지방소멸 위험 지역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단순한 관광 진흥책이 아니라, 지역 소멸 위기에 대한 구조적 대응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확산 중인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와 CBT는 매우 유사한 철학을 공유합니다. 지역의 청년 귀촌자들이 로컬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 자원을 콘텐츠로 재구성하며, SNS와 유튜브를 통해 방문 수요를 직접 창출하는 현상은 디지털 시대형 CBT의 새로운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책적으로는 단순한 예산 지원을 넘어, 주민 협동조합의 법적 지위 명확화, CBT 운영자 역량 강화 교육 체계 구축, 그리고 지역 관광 수익의 지역 내 환류를 유도하는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합니다. 지자체가 기획자가 아닌 '조력자'로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농촌관광 활성화 대책'(2023)이나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 대응 기금' 등 기존 정책과 CBT 철학을 연계하면, 주민 역량 강화와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 구축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라북도 고창군, 경상남도 남해군, 강원도 인제군 등 일부 지자체는 이미 주민 주도형 관광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조례를 마련하거나 시범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커뮤니티 투어리즘은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합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진정한 교류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교류 속에서, 지역은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주민이 주도하는 관광은 느립니다. 대형 리조트 개발처럼 단기간에 화려한 성과를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느린 걸음 속에는 지역이 스스로 회복하는 힘, 즉 내생적 발전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그 씨앗이 자라나는 곳에서, 여행은 비로소 지역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결국 커뮤니티 투어리즘이 지속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지원, 여행자의 의식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주체적 의지가 함께 맞물려야 합니다. 그 세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지역의 미래를 열어 갑니다.

 

[도움 글 · 연구 출처]

  • 세계관광기구(UNWTO). (2022). Community-Based Tourism: A Sustainable Livelihoods Approach. 마드리드: UNWTO 출판부.
  • 농촌진흥청. (2023). 『농촌 관광의 지역 경제 파급 효과 분석』. 전주: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
  • 문화체육관광부. (2023). 『2023 농촌관광 활성화 대책 보고서』. 세종: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
  • 오상훈·최병길. (2020). "커뮤니티 기반 관광(CBT)의 지속가능성 결정 요인 연구." 『관광연구저널』, 34(3), 25–44.
  • 이훈·황희정. (2022). "지역 주민 주도형 관광 프로그램이 공동체 회복력에 미치는 영향." 『한국관광학회지』, 46(2), 51–72.
  • Scheyvens, R. (2002). Tourism for Development: Empowering Communities. Harlow: Prentice Hall.
  • 행정안전부. (2023). 『지방소멸 대응 기금 운용 현황 및 성과』. 세종: 행정안전부 지역활성화과.
  • 유엔환경계획(UNEP). (2021). Nature-Based Solutions in Community Tourism: Case Studies. 나이로비: UNEP.

 

커뮤니티-투어리즘
커뮤니티 투어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