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저는 '골든타임이 사라진 지역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다루면서, 공공정책수가와 지역필수의료특별회계 같은 재정적 처방만으로는 수도권 쏠림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문제를 먼저 겪은 나라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일본, 독일, 프랑스 세 나라의 실제 정책을 뜯어보고, 그 성패가 한국의 지역의사제 논쟁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느 나라의 모델도 그대로 옮겨 심을 만큼 완결적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실패의 결이 다르기 때문에, 그 실패들을 겹쳐 놓고 보면 한국이 피해야 할 함정이 꽤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1. 필수의료 공백은 OECD 전체의 공통 질환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지역 간 의료 편재와 특정 진료과 기피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령화, 도시화, 그리고 의료의 세부 전문화가 동시에 진행된 OECD 선진국 대부분이 유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다만 각국이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는 뚜렷한 온도차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의사의 직업 선택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강제적 배치 방식을 택했고, 어떤 나라는 시장 유인을 통해 자발적 이동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스펙트럼의 양 끝에 독일과 프랑스가, 그 중간 어딘가에 일본이 위치해 있다고 저는 봅니다.
2. 일본: 지역정원제, 정원을 나누어 지역에 심다
한국의 의대 증원 논쟁에서 가장 자주 소환되는 나라는 단연 일본입니다. 일본은 2006년 '신의사확보종합대책'을 시작으로 의사 부족이 심각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했고, 2007년 7,625명이던 정원을 2019년 9,330명 안팎까지 늘렸습니다. 이 증원분의 상당수를 차지한 것이 바로 지역정원제(地域枠)입니다. 대학 및 도도부현별로 조건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재학 6년 동안 장학금 성격의 대여금을 지원받는 대신 졸업 후 약 9년간 해당 지자체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근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2023년 기준 의대가 설치된 80개 대학 중 71개 대학이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지역정원제로 선발된 학생은 전체 의대 정원의 19.1%에 달합니다.
성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역정원제 졸업생의 지역 정착률이 95%를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국가고시 합격률 역시 일반 정원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후생노동성 자체 조사에서 지역정원 대상자의 4.6%가 의무 복무 지역을 이탈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계는 따로 있습니다. 의사 수 증원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정작 증원의 근거가 된 인구 추계 자체가 지방 인구 감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원을 아무리 지역에 묶어 놓아도, 그 지역의 인구가 정원을 설계할 당시보다 훨씬 빠르게 줄어들면 정책의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즉 일본의 지역정원제는 '배치'의 문제는 상당 부분 풀었지만,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풀지 못한 모델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3. 독일: 강제와 위약금으로 만든 안전판
독일은 좀 더 강경한 길을 택했습니다. 2018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1~2%씩 늘리는 한편, 주정부 권한으로 전체 정원의 5~10%가량을 '지역의사 할당제'로 선발합니다. 이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대입 자격시험인 아비투어 점수 없이 별도의 의학 적성고사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대신, 졸업 후 10년간 주정부가 지정한 의료 취약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25만 유로, 우리 돈으로 3억 6천만 원가량의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이 제도의 특징은 유인이 아니라 강제라는 점입니다. 장학금이나 지원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입학 단계에서부터 진로를 사실상 확정 짓고 이를 어기면 막대한 금전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그만큼 실효성은 높지만, 독일 내에서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이 제도가 메우려는 공백의 근본 원인, 즉 주치의의 고령화와 후속 인력의 대도시 선호 현상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시 말해 독일형 모델은 '지금 당장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에는 강력하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를 계속 원하게 만드는 근무 여건 개선과는 별개의 과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4. 프랑스: 재정 유인의 한계, 구호로 끝난 정책들
프랑스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했습니다. 의료 취약지에 처음 개원하는 의사에게 최대 1만 유로를 지원하고, 방문·파견 진료에는 반나절당 200유로를 추가로 지급하는 등 철저히 재정 유인을 통한 자발적 이동을 유도해 왔습니다. 2019년에는 4천 명의 일반가정의를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지역에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 6월, 프랑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집 근처 의사 지역 연대 계획' 역시 결국 구호에 그쳤다는 현지 언론의 평가가 나왔습니다. 재정적 유인만으로는 젊은 의사들이 선호하는 근무 시간, 배우자의 취업 기회, 자녀 교육 여건 같은 삶의 질 요소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것이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는 냉정한 진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이 내세웠던 "집 근처에서 아이를 낳고 수술받을 수 있는 나라"라는 구호와 프랑스의 '집 근처 의사' 계획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역 격차 해소를 향한 정치적 수사가 재정 투입만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은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패턴으로 보입니다.
5. 세 모델을 겹쳐 보면 보이는 것
일본은 정원 분리, 독일은 강제 배치, 프랑스는 재정 유인이라는 서로 다른 축을 택했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력을 '어떻게 그 자리에 세울 것인가'라는 공급 측 설계에는 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지만, '그 자리에서 왜 계속 일하고 싶게 만들 것인가'라는 정주 여건의 문제는 세 나라 모두 완전히 풀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이탈률, 독일의 위약금 논란, 프랑스의 계획 실패는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실패의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6. 한국형 해법을 위한 제언 - 3축 프레임워크로 다시 읽기
제가 이전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세금·사회보험료·재정지출의 3축 프레임워크를 여기에 다시 적용해 보면, 한국의 지역의사제 논쟁이 왜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지가 좀 더 선명해집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논의는 정원 확대라는 '공급'의 축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이는 일본형 모델과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겪은 이탈률 문제를 감안하면, 정원을 지역에 묶어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독일식의 의무 복무 조항과 위약금 장치를 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강제 조항만으로는 헌법적 논란과 의료계의 반발을 피할 수 없으므로, 프랑스식 재정 유인을 근무 여건 개선이라는 목적에 한정해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에는 일본·독일·프랑스에 없는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조차 인구 감소로 지역정원제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데, 한국의 지방 인구 감소 속도는 이보다 빠릅니다. 따라서 지역의사제를 설계할 때는 단순히 '몇 명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지역의 의료 수요 자체가 10년, 20년 뒤에도 유지될 것인지를 함께 추계해야 합니다. 이는 최근 논의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와 공공정책수가가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인구 추계 모델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7.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한국이 이 논쟁에서 가진 유일한 이점은, 이미 세 나라의 실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후발주자라는 위치입니다. 일본의 이탈률, 독일의 위헌 논란, 프랑스의 구호성 정책이라는 세 가지 함정을 미리 알고 설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내 논쟁은 정원 확대 여부라는 입구 논쟁에 머물러 있을 뿐, 정작 해외 사례가 공통적으로 실패한 지점인 '정주 여건'과 '장기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필수의료 공백은 의사를 몇 명 더 뽑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의사가 그 자리에 오래 남고 싶어지는 지역을 어떻게 함께 만들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을, 이번 비교 분석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 보건복지부, "의사인력 확충 방안 마련 위한 일본 사례 청취" 보도자료
- 의협신문, "일본은…지역의료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 '이렇게' 했다"
- 의협신문, "필수의료·지방의사 편재(偏在) 해결을 위한 일본의 대응 전략"
- 부산일보, "日 의대 80곳 중 71곳 지역정원제… 졸업자 95.3% 지역 정착"
- 한의신문, "日 지역 정원제, 지역의료 개선·정착성 제고에 '효과적'"
- 네이트뉴스, "간호사 인턴 거쳐야 의사 된다…독일 의대, 구급대원도 우대"
- 인천투데이, "한국 '지역의사제' 논의, 독일은 '지역의사제' 실험 중"
- 메디포뉴스, "외국의사도 대도시 쏠림현상…독일의 해법은?"
- 메디게이트뉴스, "구호만 앞서고 실패로 끝난 프랑스 의료취약지 '집 근처 의사' 계획"
- 브릿지경제, "'의료사막화' 대응 나선 국가들… 의료취약지역 관리·인력 지원 정책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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