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유럽의회는 로봇에게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9년이 지난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기념 토론회에서 "로봇세 같은 것도 나중에 한 번 얘기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으며 같은 이름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같은 세금을 두고 한쪽은 문을 닫았고, 다른 한쪽은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유럽은 포기했고, 한국은 왜 지금 다시 꺼내드는지를 살펴보고, 두 논쟁이 사실은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는 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1. 2017년, 로봇세는 왜 '전자인간' 논쟁으로 시작되었나
로봇세 논의의 출발점은 2016년 유럽의회 법률위원회 소속 매디 델보 의원이 제출한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고도로 자율적인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인간'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었고, 로봇으로 인한 사고 배상을 위한 의무보험 체계와 함께 로봇세 도입 가능성도 함께 논의됐습니다. 여기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가세하면서 논쟁은 국제적으로 확산됩니다. 게이츠는 "인간 노동자가 5만 달러어치 일을 하면 소득세와 사회보장세를 내는데, 같은 일을 로봇이 한다면 로봇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매기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로 자동화세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보고서를 표결에 부친 유럽의회는 2017년 2월 로봇세 조항을 최종안에서 제외했습니다. 로봇 규제 프레임워크 자체는 채택했지만, 세금 부과 방안만큼은 걷어낸 것입니다. 이 시점이 바로 유럽에서 로봇세 논쟁이 사실상 '한 번 표결되고 닫힌 의제'가 된 순간입니다.
2. 유럽연합은 왜 포기했는가
유럽의 포기에는 세 가지 층위의 이유가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2-1. 법인격의 딜레마
세금은 원칙적으로 법인격이 있는 주체만 납부할 수 있는데, 현행 법체계에서 로봇은 자연인도 법인도 아닙니다. 로봇에게 전자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됐지만, 이는 세제 문제를 넘어 법철학적 논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로봇 자체가 아니라 로봇을 '소유하고 활용하는 기업'에 과세하는 우회로만 남게 됩니다. 문제는 이 우회로가 사실상 법인세·소득세 체계 안에서 이미 다뤄질 수 있는 사안이라, 별도의 '로봇세'라는 신설 세목이 필요한지에 대한 근거가 약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2-2. 세원의 착시
스위스 제네바대 세법학자 자비에 오베르손의 분석처럼, 로봇에게 인간 노동자와 동일한 소득세율을 적용한다고 가정해도 실제 징수 가능한 세수는 기대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자율주행차나 산업용 로봇이 대체하는 일자리 상당수가 애초에 소득세 부담이 크지 않은 구간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수 확보라는 명분과 실제 계산이 어긋나면서, 로봇세는 '상징은 크지만 실익은 작은' 세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2-3. 산업 발전 저해 우려
국제로봇협회를 비롯한 로봇 산업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로봇 도입에 추가 비용을 얹는 것이 산업 경쟁력과 고용 자체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로봇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로봇세 도입 안건을 부결시켰고, 논쟁은 법적·재정적 실익보다 정치적 상징성이 앞선 의제로 마무리됩니다.
3. 10년 후, 한국에서 로봇세가 다시 꺼내진 이유 - 다른 질문
그런데 한국에서 2026년 다시 등장한 로봇세 논의는 2017년 유럽의 질문과 결이 다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기업이 AI로 혜택을 보면 그에 따른 부담도 져야 사회적 저항이 줄어든다"는 형평성 논리에 가깝고, 민주연구원 역시 같은 해 9월 "AI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로봇세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로봇에게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2017년식 질문이 아니라, 'AI와 자동화로 발생한 이익과 그로 인한 고용 충격의 부담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라는 재원조달 질문에 가깝습니다.
이 배경에는 구체적인 통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KDI의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AI 도입으로 총요소생산성이 최대 3.5퍼센트 오르는 동시에 연간 25만 6천 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했고, AI를 도입한 기업의 매출은 20퍼센트가량 늘어난다는 결과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이익은 기업 쪽에 쌓이는데 위험은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되는 비대칭이 통계로 확인된 셈입니다. 같은 해 국회미래연구원도 AI 기업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그 원천을 제공한 노동시장과 사회에는 별도의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를 지적하며 'AI 사회보장세'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기 발표된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정반대 방향의 정책, 즉 AI·로봇 부품의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세액공제 신설이 함께 담겨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에서는 로봇 확산에 세금을 물리자는 논의가, 다른 한쪽에서는 로봇 산업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정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4. 같은 이름, 다른 질문 -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질문의 전치'라는 프레임입니다. 2017년 유럽의 로봇세는 본질적으로 법인격과 산업 보호라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 안에서는 세수 확보가 부차적인 명분이었습니다. 반면 2026년 한국의 로봇세는 처음부터 부과기반의 재설계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유럽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접은 질문과, 한국이 지금 던지고 있는 질문은 이름만 같을 뿐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유럽의 실패를 근거로 한국의 로봇세를 미리 기각하는 논리가 논점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확인한 것은 '전자인격에게 소득세를 매기는 방식은 실익이 작다'는 것이지, 'AI로 발생한 기업 이익의 일부를 사회보장 재원으로 환수하는 방식 전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번 국회미래연구원의 제안이나 기존에 논의됐던 자동화세 방식은 로봇 자체를 납세 주체로 세우기보다, 기업의 매출 대비 고용 비율이나 AI 도입에 따른 초과 이익을 과세 근거로 삼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이는 2017년식 '로봇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세금을 매긴다'는 발상과는 설계상 다른 갈래입니다.
5. 세 가지 실행 경로와 세 축 프레임과의 접점
로봇세로 논의되는 방안들은 대략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로봇이 대체한 노동에 대응하는 가상 소득을 산정해 과세하는 방식, 둘째는 기업의 매출 대비 고용 비율을 기준으로 하는 자동화세 방식, 셋째는 AI 기업의 데이터 활용 이익 일부를 사회보장 목적세 형태로 환수하는 방식입니다. 이 세 갈래는 결국 [welfare-financing-series]에서 반복해서 짚었던 삼축 프레임, 즉 세입·사회보험료·재정지출 가운데 어느 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현행 사회보험 체계가 노동소득을 부과기반으로 삼고 있는데 AI와 자동화가 바로 그 노동소득 총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시리즈에서 다룬 "위험과 이익의 탈구" 문제, 즉 위험은 개인화되고 이익은 법인화되는 비대칭 구조를 되짚어보면, 로봇세 논의는 결국 사회보험료 축의 부과기반이 침식되는 데 대한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이미 인구구조 변화로 부과기반 축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AI발 축소까지 겹치는 '이중 침식'이 논의의 실질적 배경인 셈입니다.
6. 그럼에도 남는 질문들
다만 한국의 로봇세 논의가 유럽보다 정교하다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세율로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고, 같은 정부 안에서 로봇 산업을 육성하는 세제와 로봇 확산에 부담을 지우는 세제가 동시에 검토되는 모순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또한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AI 기업에게 국내 세원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국제조세 문제 역시 유럽이 부딪혔던 것과 동일한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유럽이 접은 질문이 다시 열릴 자격을 얻으려면, 적어도 '누구를 과세할 것인가'라는 유럽식 질문과 '어떻게 재원 구조를 재설계할 것인가'라는 한국식 질문을 뒤섞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 유럽의회 법률위원회 매디 델보 보고서(2016)와 2017년 2월 로봇 규제 결의안(로봇세 조항 제외) 관련 보도
- 빌 게이츠의 로봇세(자동화세) 도입 주장 인터뷰(2017년 2월, Quartz) 관련 국내 보도
- 자비에 오베르손(제네바대) 등의 로봇세 세수 실익 분석 논의
- 이재명 대통령 경사노위 1기 출범 정책토론회 발언(2026년 3월) 관련 보도
- 민주연구원의 로봇세 도입 논의 촉구 입장(2026년 9월) 관련 보도
- KDI 'AI의 거시경제 영향 분석' 보고서(2026년 7월) 관련 통계
- 국회미래연구원의 AI 사회보장세 제안(2026년 4월) 관련 자료
- 2026년 세제개편안 중 AI·로봇 부품 국내생산 세액공제 신설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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