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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첨단산업 인력난 시대, 이공계 기피 현상과 청년 복지정책의 접점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9. 19.

반도체 산업은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는데, 정작 국내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원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감당해야 할 위험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가'라는 복지정책의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합니다.

 

1. 호황 속의 공동화 - 통계로 보는 역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인력은 2021년 17만 7천 명에서 2031년 30만 4천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최대 8만 1천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미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와 미국 국립과학재단, 맥킨지가 공동 발표한 보고서는 2026~2030년 미국 반도체 투자를 뒷받침하려면 약 18만 9천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지만, 실제 공급 가능한 인력은 이의 극히 일부에 그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인재 공급의 근원지가 되어야 할 국내 대학원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석·박사과정은 정원 885명 중 221명만 입학해 75%에 이르는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4대 과학기술원의 수시모집 지원자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학부 단계의 이공계 선호가 회복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고, 영재고·과학고 출신의 의·치대 진학자 수도 2024학년도 202명에서 2026학년도 113명으로 2년 새 44.1% 줄어드는 등 '의대 쏠림'이 다소 완화되는 신호도 포착됩니다. 하지만 이런 회복은 입시 단계의 선택일 뿐, 대학원 진학·연구자 정착이라는 다음 관문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이탈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은행이 국내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72.4%, 30대의 61.1%가 해외 이직 의향을 밝혀, 커리어 초기 단계일수록 이탈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으로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나간 이공계 인력이 총 34만 명에 이르고, 이 중 석·박사급만 9만 6천 명입니다. 임금 구조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외 체류 이공계 전문가는 근속 13년 차에 평균 36만 6천 달러의 최고 연봉에 도달하는 반면, 국내 체류자는 19년 차가 되어서야 12만 7천 달러 수준의 정점을 찍습니다.

 

2. 원 프레임: '위험의 사유화 vs 안정의 제도화' 격차

이공계 기피 현상을 설명하는 기존 담론은 대개 '의사·전문직 선호'라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귀결시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공계에서 이런 쏠림이 나타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위험의 사유화 대 안정의 제도화 격차'라는 프레임입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국가면허제와 정원 관리를 통한 공급 통제, 그리고 건강보험이라는 안정적 수요 기반 위에서 커리어를 쌓습니다. 즉 진입 이후의 위험이 제도적으로 상당 부분 흡수되어 있는 경로입니다.

 

반면 이공계 연구자·공학자의 경로는 정반대입니다. 석·박사 과정 5년에서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생활비 불안정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고, 학생연구원이라는 신분은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모호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우며, 취업 이후에도 상당수가 계약직·비정규 연구직으로 출발합니다. 즉 첨단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을 길러내는 인적자본 축적 기간 자체가, 정작 그 기간 동안 개인이 짊어져야 할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도적 우산을 제공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공계 기피는 능력이나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정도의 노력과 재능을 투입했을 때 어느 경로가 위험을 사회가 나누어 지고, 어느 경로가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는가에 대한 매우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청년 복지정책과 만나는 세 가지 지점

3-1. 소득 안정망의 공백

정부는 2024년 8월 '한국형 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려금)' 도입을 발표했고, 2025년 29개 대학을 시작으로 2026년 하반기에는 48개교로 참여 대학을 확대해 약 5만 5천 명의 이공계 대학원생이 석사 월 80만 원, 박사 월 110만 원의 최저 생활비를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두 가지 한계가 뚜렷합니다. 하나는 전국 대학원 전체를 포괄하지 못해 미참여 대학 소속 대학원생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제도가 기존 인건비·장학금과의 '부족분 보전'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실질적인 생계비 보장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실태조사에서도 이공계 연구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학비·생활비 등 경제적 어려움을 꼽은 비율이 48.7%에 달했습니다.

3-2. 고용·사회보험 사각지대

학생연구원 신분은 '학생'과 '근로자'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놓여 있어, 산재·고용보험 등 청년 세대가 노동시장 진입 초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이는 앞서 다룬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 지연 문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노동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사회보험 체계가 뒤늦게 따라가는 구조적 패턴과 맞닿아 있습니다.

3-3. 세대 내 소득 격차와 해외 유출의 악순환

국내외 임금 격차와 근속연수별 소득정점 시점의 차이는 결국 청년 연구자들이 국내에 머물 유인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국내 연구생태계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을 가속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청년 복지정책이 흔히 주거·자산형성·고용안정 등 노동시장 '바깥'의 이슈로만 다뤄지는 경향이 있지만, 이공계 인재의 국내 정착이라는 국가 경쟁력 문제는 사실상 청년 세대의 소득·고용 안전망 설계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이번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

첨단산업 인력난과 이공계 기피 현상을 동시에 해결하려면, 개인의 진로 선택을 탓하기보다 인적자본 축적 기간 동안 청년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사회가 얼마나, 어떻게 나누어 질 것인가라는 설계의 문제로 다시 물어야 합니다. 스타이펜드 제도의 전면 확대와 최저생계비 연동 강화, 학생연구원의 법적 지위와 사회보험 적용 정비, 국내외 처우 격차 완화를 위한 종합적인 접근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재정 투입은 인재가 새어나가는 만큼 그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공계 기피는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복지정책이 다뤄야 할 또 하나의 구조적 공백입니다.

 

[참고자료]

  •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국내 반도체 인력 수급 전망(2021년 17.7만 명→2031년 30.4만 명, 최대 8.1만 명 부족)
  • SEMI·미국 국립과학재단·맥킨지 공동보고서: 미국 반도체 인력난 전망(2026~2030년 약 18.9만 명 추가 인력 필요)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황정아 의원실) 제출자료: 영재고·과학고 출신 의·치대 진학 추이(2024~2026학년도)
  • 언론보도(경북매일 등): 2025학년도 서울대 공과대학원 정원 미달 현황
  • 한국은행, 「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2025): 이공계 석·박사급 해외이직 의향 설문조사 결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도자료: 한국형 스타이펜드(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 지원사업) 도입 및 확대 현황(2024~2026)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학생 인건비 제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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