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인구감소지역 지원특별법 시행 5년의 성적표를 예산과 집행률이라는 숫자로 짚어봤습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왜 그 숫자들이 구조적으로 개선되기 어려운지,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설계가 가능한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문제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을 넣는 방식 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인구감소지역 지원특별법,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나
인구감소지역 지원특별법은 2022년 제정된 법으로,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과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특례를 규정해 지역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법을 뒷받침하는 재정수단이 매년 1조 원씩 2031년까지 총 9조 7,500억 원 규모로 배분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입니다. 제도의 골격은 분명합니다. 인구감소지역과 관심지역을 지정하고, 그 지역에 재정과 규제 특례를 몰아줘 인구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골격이 5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2. 예산은 늘었는데 구조는 그대로인 세 가지 이유
2-1. 지정 기준의 경직성, 그리고 다가온 재지정의 갈림길
인구감소지역은 2021년 처음 지정·고시된 뒤 한 번도 전면 재검토되지 않았고, 2026년에 처음으로 재지정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제도적 허점이 있습니다. 만약 특정 지역이 지정에서 해제되면, 그동안 누려온 재정 특례와 지원이 곧바로 끊기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은 일본이 부칙의 경과조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우리도 지정 해제 이후 한시적으로나마 특례를 유지하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지정과 해제를 이분법적 스위치처럼 운영하는 지금의 방식은, 지역이 조금만 개선되면 지원이 끊기고 지원이 끊기면 다시 나빠지는 악순환을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아울러 관심지역이라는 명칭도 인구감소관심지역으로 바뀌는 등 제도가 계속 손질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의 설계가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2-2. 성과보다 규모와 집행률에 갇힌 배분 방식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투자계획 평가는 오랫동안 사업 규모를 우대해 왔습니다. 최근까지도 총사업비 200억 원 이상인 사업을 중점사업으로 권장해 가점을 부여하는 기준이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그동안 균형발전특별회계나 국고보조사업이 해온 하드웨어 인프라 확충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지역 연구기관은 이런 방식이 지역 주도의 소규모 맞춤형 대응이라는 기금의 설립 취지와 오히려 어긋난다고 평가합니다. 실적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평가에서 추진 실적 배점이 10%로 확대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투자계획서 자체의 완성도가 80%를 차지해 실제로 인구가 늘었는지보다 계획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썼는지가 더 큰 비중을 갖습니다. 그 결과가 국회예산정책처가 지적한 2025년 말 기준 약 9,500억 원의 미집행액입니다. 예산은 편성되지만 사업은 지연되고, 지연된 사업은 다시 다음 해 실적 평가에서 발목을 잡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2-3. '지역 주도'라는 이름과 중앙정부 가이드라인 중심의 실제 설계 사이 간극
이 법의 입법 취지는 정부 주도로 추진되던 인구감소 대응 체계를 지역 주도 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금 운용을 들여다보면, 사업계획 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중앙정부가 제시하고 지자체는 그 틀 안에서 계획서를 작성해 점수를 받는 구조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지역일수록 독자적인 정책 설계 역량보다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역 주도'라는 제도의 이름과 실제 작동 방식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2026년도 기금 배분체계를 3·4단계로 다층화하고 집행률이 저조한 지역을 우수지역 선정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개편한 것도, 기존 방식만으로는 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됩니다.
3. 다른 나라는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일본 지방창생 2.0이 주는 시사점
한국보다 앞서 인구감소를 경험한 일본의 최근 정책 전환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 정부는 2025년 지방창생 2.0 기본구상을 확정하면서,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 정책에서 감소를 전제로 지속가능한 지역 모델을 만드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특징적인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부가 사업을 설계해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과 시민이 주체가 되는 민간 주도형 창생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예산 지원과 별개로 전문 인력을 지역에 직접 파견하는 방식을 병행해 왔다는 점입니다. 대학교수 등 전문가를 지역 현장에 보내 문제를 진단하게 하는 지역 재생 매니저, 그리고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에는 2022년 기준으로 6천 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 사례를 바탕으로,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패러다임 전환과 청년·여성의 지역 정착 환경 조성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예산을 얼마나 배정하느냐보다, 그 예산을 쓸 사람과 구조를 어떻게 지역에 심느냐가 정책의 무게중심이 되어 있는 셈입니다.
4. 예산 투입에서 구조 개선으로: 세 가지 전환 방향
이 시리즈에서 계속 사용해 온 조세·사회보험료·재정지출이라는 삼축 프레임으로 보면, 인구감소지역 지원은 처음부터 재정지출 축에 크게 치우친 정책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지출 축만으로 인구를 되돌리려 한 결과가 지금의 정체라면, 남은 선택지는 지출의 총량이 아니라 지출이 만들어내는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 첫째, 지정과 해제를 완충하는 한시적 특례 유지 장치가 필요합니다. 2026년 재지정을 계기로 해제된 지역에도 일정 기간 특례를 이어가는 경과 규정을 특별법에 명문화한다면, 지자체가 단기 실적에 쫓겨 무리한 사업을 벌이는 유인을 줄일 수 있습니다.
- 둘째, 배분 기준의 무게중심을 계획서의 완성도에서 실제 인구 유입 성과로 옮겨야 합니다. 사업 규모나 집행률 같은 관리하기 쉬운 지표 대신, 정주인구·생활인구·고용 지표처럼 측정은 어렵지만 정책의 목적에 가까운 지표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합니다.
- 셋째, 재정 지원과 함께 사람을 지역에 심는 인력 파견형 지원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자체 스스로 정책 설계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예산을 더 주는 것보다 그 예산을 지역 여건에 맞게 설계하고 집행할 전문 인력을 지원하는 편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인구감소지역 지원특별법은 지역 주도 대응이라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지자체가 계획서를 작성하고 점수를 받는 재정지출 중심의 제도에 가깝습니다. 예산의 총량을 늘리는 다음 5년이 아니라, 지정 기준의 유연성과 성과 중심 배분, 그리고 사람을 지역에 심는 구조 개선이 함께 논의되어야 이 법이 애초에 약속했던 '지역 주도의 인구감소 대응'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입법예고: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및 개정안 관련 공식 법령 정보
- 국회도서관 국가전략포털: 법 제정 배경(2019년 인구 데드크로스, 수도권 집중)과 입법 경과 정리
- 부산일보(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인용): 2025년 말 기준 기금 미집행액 약 9,500억 원, 광역권 협력체계·성과평가 전면 개선 필요성 제기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행안부): 2026년도 기금 배분체계를 3·4단계로 다층화하고 집행률 저조 지역을 우수지역에서 배제하는 개편 내용
- KOTRA 도쿄무역관: 2025년 지방창생 2.0 기본구상 -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지속가능 모델로의 전환, 민간 주도형 창생 강조.
- 이로운넷(국회입법조사처 시사점 인용): 지방창생 2.0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인구감소 전제 패러다임 전환, 청년·여성 정착 환경 조성 등)
-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자치협력관 자료: 지방창생 2.0의 5대 핵심 구상, 지역 재생 매니저·지역부흥협력대 등 인력 파견 사업 현황(2022년 기준 6천여 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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