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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조세국가에서 복지국가로 - 재원조달 방식이 바꾼 국가의 역할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8. 19.

세금을 걷어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던 '작은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의 보험료를 걷는 정부로 변모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정부 지출이 늘어난 결과가 아닙니다. 돈을 어떻게 걷느냐가 바뀌면서, 국가와 국민이 맺는 관계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세국가'에서 '사회보험국가'로 이어지는 재원조달 방식의 전환이 실제로 국가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그리고 이 전환이 지금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세국가'라는 개념은 어디서 왔는가

'조세국가'라는 표현을 학문적으로 처음 정식화한 사람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입니다. 그는 1918년 저작 『조세국가의 위기』에서, 근대 국가란 본질적으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전제한 뒤 그 잉여의 일부를 조세라는 형태로 징수해 운영되는 체제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국가는 생산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시장이 만들어낸 부의 일부를 거두어 공공재를 공급하는 '중개자'에 가까웠습니다.

 

이 조세국가 모델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국가가 걷는 돈의 용도가 국방, 치안, 사법 등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돌아가는' 공공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국가가 실업, 질병, 노령, 산업재해처럼 개인마다 발생 확률과 필요 급여액이 다른 위험을 떠맡기 시작하면서, 일반조세만으로는 이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보험이라는 별도의 재원조달 장치가 등장합니다.

 

2. 조세와 사회보험료, 무엇이 다른가

흔히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어차피 국가가 걷어가는 돈'으로 뭉뚱그려 이해하지만, 두 재원은 작동 원리부터 다릅니다.

  • 일반조세는 소득이나 소비, 재산에 부과되며, 낸 만큼 돌려받는다는 대가성이 없습니다. 부담 능력에 따라 걷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이 원칙이며, 그래서 조세로 조달되는 급여는 '연대'와 '재분배'의 논리 위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조세국가의 정당성이 성립하는 핵심 근거라고 봅니다. 내가 낸 돈이 정확히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사회 구성원 전체의 몫이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에 조세 징수가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 사회보험료는 이와 다릅니다. 특정 위험(질병, 노령, 실업, 산업재해)에 대비해 가입자가 낸 기여금이 급여 수급권과 직접 연결됩니다. 이른바 '기여-급여 등가성' 원칙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사회보험은 조세 인상에 따르는 정치적 저항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재원을 빠르게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낸 돈이니 내 몫'이라는 인식이 있는 재원은 저항이 적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럽 대륙형 복지국가들이 20세기 중반 이후 복지 지출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세 증세 대신 노사가 분담하는 사회보험료라는 우회로가 있었습니다.

 

3. 재원조달 방식이 국가의 역할을 바꾸는 세 가지 경로

여기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이 두 재원조달 방식의 차이가 단지 회계상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원을 조세로 걷느냐 사회보험료로 걷느냐에 따라 국가의 역할과 성격이 구조적으로 달라집니다. 크게 세 가지 경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3-1. 정당성의 논리가 바뀐다

조세로 재원을 조달하는 국가는 '보편적 시민권'에 근거해 급여를 정당화합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사회보험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국가는 '기여자로서의 자격'에 근거해 급여를 정당화합니다. 보험료를 낸 사람이 급여를 받는 구조이다 보니, 애초에 보험료를 낼 수 없었던 사람(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장기 실업자, 전업주부)은 제도 설계상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습니다. 즉 조세국가에서 사회보험국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복지가 '시민의 권리'에서 '기여자의 대가'로 성격이 옮겨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3-2. 행정 구조가 분절된다

일반조세는 단일한 국가 예산으로 통합되어 편성·집행되지만, 사회보험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처럼 각각 별도의 기금과 운영 조직을 갖습니다. 이 분절 구조는 두 가지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는 각 제도가 자기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다 보니 제도 간 칸막이가 생기고, 복합적인 위험(예: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과 요양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에 통합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산이 국회 심의를 받는 조세 재원과 달리 사회보험 재정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어 보험료율 인상 같은 결정이 국민 여론의 직접적 견제를 덜 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2026년부터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매년 0.5%포인트씩 올라 9.5%로 시작해 2033년 13%까지 오르는 일정이 큰 정치적 논쟁 없이 확정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3-3. 시민과 국가의 관계가 바뀐다

조세국가에서 시민은 일차적으로 '납세자'입니다. 국가 살림에 대해 발언할 자격은 세금을 낸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사회보험국가에서 시민은 동시에 '피보험자'이기도 합니다. 국가와의 관계가 일방적 부담-수혜 관계가 아니라, 계약에 가까운 형태로 바뀝니다. 이 변화는 국민이 복지제도를 바라보는 감각도 바꿉니다. 조세로 조달된 복지는 '주어지는 것'으로, 보험료로 조달된 복지는 '내 몫을 찾아오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왜 한국에서 기초연금 같은 조세 기반 제도보다 국민연금 같은 보험료 기반 제도에 대한 개혁 논의가 훨씬 더 첨예한 갈등을 낳는지 설명하는 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보험료 기반 제도는 '내가 낸 것을 어떻게 돌려받는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4. 한국은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가

한국의 재원조달 구조 변화를 통계로 확인해 보면, 이 전환이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GDP 대비 비중)은 2023년 기준 26.8%로 OECD 평균(33.8%)보다 약 7%포인트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상승 속도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3.7%에서 27.4%로 3.7%포인트 올라, OECD 37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승을 이끈 것은 일반조세가 아니라 법인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사회보장기여금의 GDP 대비 비중은 6.3%에서 7.3%로 늘었습니다.

 

이 흐름은 앞서 소개한 신진욱의 연구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이 낮은 조세부담률과 누진과세를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형 요소와, 사회보험 중심의 조세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대륙유럽형 요소가 함께 섞인 '혼종형 복지국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반조세는 여전히 국제 비교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복지 재원 확충의 실질적인 부담은 사회보험료 인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2021년 199.7조원에서 2026년 269.1조원으로 연평균 6.15%씩 늘었는데, 이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조세가 아닌 4대 사회보험 재정 확대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는 제가 이 시리즈에서 계속 강조해 온 '3축 재원조달 프레임(조세·사회보험료·재정지출)'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신호입니다. 세 축 가운데 조세라는 축을 정치적으로 건드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보험료라는 축으로 부담이 쏠리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쏠림이 앞서 살펴본 세 가지 경로(정당성 논리의 협소화, 행정의 분절화, 시민을 기여자로만 규정하는 관계 변화)를 그대로 한국에 재현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5. 재원조달 방식의 선택은 곧 '어떤 국가'를 선택하는 것

정리하면, 조세국가에서 사회보험국가로의 이동은 단순한 재정 기법의 변화가 아니라 국가상 자체의 전환입니다. 조세 중심 재원조달은 보편적 연대에 기반한 '재분배자로서의 국가'를, 사회보험 중심 재원조달은 계약적 등가성에 기반한 '위험 관리자로서의 국가'를 만들어냅니다. 두 모델 모두 나름의 정당성과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조세 모델은 사각지대를 줄이지만 증세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사회보험 모델은 재원 확충에는 유리하지만 기여 능력이 없는 사람을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이 지금 마주한 과제는 이 두 논리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혼합되어 버린 두 논리 사이에서 어느 쪽 부담과 어느 쪽 사각지대를 감수할 것인지를 명시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보험료 인상만으로 복지 재정을 계속 떠받치는 방식은 기여 능력이 취약한 계층(플랫폼 노동자, 1인 가구, 지역가입자)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재원조달 방식에 대한 논의가 세율이나 요율 같은 숫자의 문제로만 다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국가가 국민을 무엇으로 대할 것인가(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대할 것인가,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계약자로 대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신진욱, 「한국 국가의 조세·분배 역량의 장기 변동: 복지·조세규모와 조세구조의 이념형적 분석」, 한국사회정책 (2020) - 한국의 조세·복지 구조를 자유주의형과 대륙유럽형이 혼합된 '혼종형 복지국가'로 분석
  • 조지프 슘페터, 『조세국가의 위기(Die Krise des Steuerstaats)』(1918) - 근대 조세국가 개념의 학문적 기원
  • 국회예산정책처, 「국제 비교로 본 한국 복지지출 수준과 신규 과제」(2026.3) - 공공사회복지 예산(보건·복지·고용) 증가 추이
  • 한국세정신문, 「한국 조세부담률,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2025.4) - 한국·OECD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 비교 통계
  • 한국경제연구원, 「최근 5년 OECD 국가별 국민부담률 비교」 - 한국의 국민부담률 상승폭 및 세원별(법인세·사회보장기여금) 증가 요인 분석
  • 이용교, 「2026년부터 국민연금이 바뀐다」, 복지평론 - 2026년 국민연금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개편 내용
  • 국회예산정책처, 「알기쉬운 재정: 조세부담률」 - 조세부담률·국민부담률 개념 정의

 

조세국가에서-복지국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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