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한파 특별대책", "응급 잠자리 확충"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년 비슷한 대책이 되풀이될 뿐, 노숙인 문제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5년마다 노숙인 복지를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세우고 주거·의료·고용 세 축을 지원하겠다고 밝혀왔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정책은 여전히 '오늘 밤 잠자리'와 '한 끼 식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우리 사회의 노숙인 정책은 예방이나 자립이 아니라 늘 응급 대응 단계에서 멈추는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그 배경에 있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를 짚어보겠습니다.
1. 법적 출발점 자체가 '응급 보호'였다는 경로의존성
노숙인 정책이 응급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책이 처음 설계될 때부터 응급 구제의 틀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경로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노숙인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대량 실직과 가족 해체가 동시에 벌어지면서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우선 이들을 수용할 응급 보호시설과 급식소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문제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대응 체계가 이후 정책의 기본 골격으로 굳어졌다는 점입니다. 노숙인만을 위한 독립적인 법률 없이 오랜 기간 부랑인 복지 관련 규정과 임시방편적 지원 대책에 의존해오다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실제로 제정된 것은 2011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정책의 법적 정당성 자체가 취약한 상태였다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법이 뒤늦게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오랫동안 '응급 보호가 먼저, 자립 지원은 그다음'이라는 순서가 관행으로 굳어진 뒤에 법이 그 틀을 추인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종합계획에는 주거·의료·고용 지원이 나란히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예산과 인력 배치에서는 응급잠자리·급식·일시보호처럼 즉각적인 위기 대응 사업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주거 이전이나 장기 자립을 위한 사업은 뒤늦게 부가되는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제도가 만들어진 순서 자체가 이후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계속 규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2. 계단형 지원 모델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탈락과 재유입
두 번째 이유는 노숙인 지원 체계 자체의 설계 방식에 있습니다. 한국의 노숙인 복지 전달체계는 오랫동안 응급잠자리와 일시보호시설을 거쳐 자활시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립 주거로 나아가는 '계단형(단계적)' 모델을 기본 틀로 삼아왔습니다. 문제는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거나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 구조적 탈락이 수치로 드러납니다. 생활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6.8%가 '단체생활과 규칙 때문'이라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계단형 모델이 전제하는 순응적인 시설 생활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뜻입니다.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의존 문제를 가진 사람일수록 단체생활 규칙을 지키며 단계를 밟아 올라가기가 더 어렵고, 결국 상위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응급 지원 언저리에 머물게 됩니다.
같은 조사에서 노숙인 규모는 2021년 1만 4,404명에서 2024년 1만 2,725명으로 줄었지만, 시설 노숙인 중 노인 비율은 같은 기간 32.7%에서 36.8%로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거처 유형별로도 자활시설 입소자는 1,126명(8.8%)에 그친 반면 재활·요양시설 입소자는 2,908명(22.8%)으로 훨씬 많았습니다. 이는 계단을 밟아 자립으로 이어지는 경로보다, 특정 단계에 정체되거나 보호적 성격이 강한 시설로 옮겨가는 경로가 더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리 노숙인의 노숙 계기로는 '실직'이 35.8%로 가장 많이 꼽혔고, 미취업률은 75.3%에 달해 21년 조사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즉 계단을 오르는 힘이 되어야 할 고용 연계 자체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미 해외 정책 논의에서도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단계적 접근을 '스테어케이스(staircase) 모델'이라 부르며, 참가자가 정해진 과제를 모두 완수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특정 단계에 머무르거나 탈락하는 한계를 지적해왔습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입니다. 이는 준비 과정이나 자격 요건을 앞세우지 않고 우선 독립 주거를 제공한 뒤, 필요한 보건·복지 서비스를 이후에 연계하는 방식입니다. 핀란드는 2008년부터 하우징 퍼스트 원칙을 지방정부 차원의 시범사업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의 장기 정책으로 채택했고, 그 결과 2008년부터 2023년까지 노숙인 수가 5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하우징 퍼스트 관점을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된 정책 기조는 계단형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3. 예방·자립 지원이 지자체 자체사업으로 남아있는 재정 구조
세 번째 이유는 재원 배분 방식에 있습니다. 응급잠자리와 급식 같은 최소한의 생존 지원은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되는 반면, 노숙을 예방하거나 자립으로 연결하는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있고 없고가 갈리는 임의적 성격의 사업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시주거비 지원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주거 상실 위기에 놓인 사람이 실제로 거리로 나앉기 전에 임시 거처 비용을 지원해 노숙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8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만 시행되고 있어 거주 지역에 따라 예방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갈립니다. 양질의 공공주택으로 옮겨가도록 돕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사업' 역시 효과적인 사업으로 평가받지만 예산이 고정적이고 제한적으로 편성되어 있어 확대에 한계가 있습니다. 의료 지원 영역에서도 노숙인을 위한 의료체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정신건강에 대한 체계적 지원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고용 지원 사업 역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데다 단기적이고 형식적인 성격이 강해, 사업이 끝난 뒤 실제 취업이나 직업훈련으로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사후관리 체계가 미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면 응급잠자리, 종합지원센터 상담, 일시보호 같은 사업은 전국 단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운영되는 최소 안전망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결국 국가가 책임지는 최소한의 응급 대응선은 명확히 존재하지만, 그 위로 올라가는 예방과 자립 지원은 지역별 재정 여건이라는 변수에 좌우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노숙인 정책만의 문제라기보다, 국고보조사업과 지방재정이 맞물리는 복지 전달체계 전반에서 반복되는 패턴이기도 합니다. 특정 사업이 법정 의무사업으로 전국에 균질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자체의 선택적 사업으로 남아 있는 한, 예방과 자립 지원의 총량은 구조적으로 응급 대응의 총량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세 가지 구조가 맞물려 만드는 '응급 고정' 현상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이유, 즉 응급 보호에서 출발한 제도의 경로의존성, 계단형 모델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탈락과 재유입, 그리고 예방·자립 지원이 지자체 자체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재정 구조는 서로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로 맞물려 있습니다. 법이 응급 대응을 우선순위로 놓고 출발했기 때문에 계단형 모델이 자연스러운 설계로 채택되었고, 계단형 모델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다시 받아줄 곳은 결국 응급 보호 체계뿐이며, 그 응급 보호 체계만이 전국 단위로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다 보니 예방과 자립 지원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리는 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 순환을 끊으려면 세 지점 모두에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우징 퍼스트처럼 주거를 먼저 제공하는 방식을 시범사업 수준을 넘어 정책 기조로 검토하고, 임시주거비 지원사업처럼 예방 효과가 검증된 사업을 법정 의무사업으로 전환해 지역과 무관하게 제공되도록 하며, 고용·의료 지원의 사후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응급 잠자리를 늘리는 대책만으로는, 그 잠자리를 거쳐 간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돌아오는 순환 자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국회입법조사처, 「노숙인 복지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 주거·의료·고용 지원제도를 중심으로」, NARS 현안분석 333호, 2024
- 보건복지부,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
-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 「노숙인 등의 복지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과 현재의 쟁점」
-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 「핀란드의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에 기반한 노숙인 지원 정책」, 국제사회보장리뷰 2024년 겨울호
-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 「유럽연합(EU) 국가들의 하우징 퍼스트 관점에 기반한 노숙인 지원 현황과 시사점」, 국제사회보장리뷰 2023년 가을호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인 의료비 부담과 본인부담상한제의 한계 (1) | 2026.09.03 |
|---|---|
| 정신건강 복지서비스의 공백 - 예방부터 재활까지 (0) | 2026.09.02 |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20년, 보장률은 왜 70%의 벽을 넘지 못했나 (1) | 2026.09.01 |
| 기업복지와 국가복지, 이중구조가 만드는 격차 (0) | 2026.08.31 |
|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 지출은 대체 관계인가 보완 관계인가 (0) | 2026.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