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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 브랜딩 시대, 국가는 어떻게 우리의 여행 정체성을 설계하는가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2. 25.

과거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 선택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나는 어떤 가치를 좇는 여행자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이 변화를 읽고, 관광을 ‘브랜드 프로젝트’로 다루며 특정한 감정,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시민 정체성까지 설계하려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 브랜딩과 관광 정책이 어떻게 우리의 여행 정체성을 형성·조정하는지를 심도있게 분석하고자 합니다.

 

1. 이론적 배경: 국가브랜드와 여행 정체성

국가브랜드는 한 국가에 대해 외부와 내부 구성원이 떠올리는 종합적인 이미지와 상징, 감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수출·투자·관광·국가 위상 등 다차원적 목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광 연구에서는 국가브랜드가 여행 의도, 재방문 의도, 추천 의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며, 브랜드 인지도·브랜드 이미지·연상·품질·충성도 등 요소로 분석됩니다. 이러한 브랜드 요소는 단지 외국인의 선택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이 자국을 어떻게 여행하고 경험할지에 대한 ‘기대 역할’을 만들어 냅니다.

 

여행 정체성은 개인이 자신을 “배낭여행자”, “웰니스 여행자”, “K-컬처 탐험가” 등 특정 유형의 여행자로 인식하는 심리적·사회적 구성물입니다. 이 정체성은 개인의 욕구와 경험, 또래 문화뿐 아니라 국가가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관광 서사와 이미지에 의해 점진적으로 형성됩니다. 즉, 국가브랜드는 외부를 향한 마케팅이면서 동시에 내부 시민들의 관광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상징 정치로도 작동합니다.

 

2. 국가의 여행 브랜딩 전략: 슬로건에서 정책까지

국가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여행 브랜딩을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특정한 여행자상을 제안합니다.

  • 관광 슬로건과 캠페인: “Discover Thainess”와 같은 국가 캠페인은 특정 문화성(‘타이니스’)을 전면에 내세워 관광객뿐 아니라 디아스포라와 자국민에게도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이 나라답다’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 통합 디자인·언어 전략: 국가 로고, 색상, 메시지를 일관되게 설계함으로써 어느 맥락에서 보더라도 “그 나라다운” 이미지를 즉시 연상시키도록 합니다. 이는 국민에게도 자국을 특정 키워드로 사고하도록 유도합니다.
  • 관광 브랜드자산 모델과 데이터 활용: 최근에는 여행 전·후의 온라인 데이터, 인지도·이미지·연상·품질·충성도 등을 정량화한 관광 브랜드자산 모델을 활용해 국가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측정·관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여행 경험을 강조·축소할지에 대한 정책적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 세분시장 기반 맞춤 전략: 정부와 관련 기관은 국가별·세대별 수요에 맞춘 맞춤형 관광 전략을 수립하고, 체험형·웰니스·의료관광 등 고부가가치 상품을 중점 육성하면서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이상적인 여행 형태로 상징화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국민이 “우리나라 여행을 한다면 이런 방식이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도록 행동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3. 사례 분석: 한국 관광 브랜드와 여행 정체성

한국의 경우, K-콘텐츠와 쇼핑, K-푸드가 인바운드 관광 선택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며 한국관광 브랜드자산에서 높은 영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스스로를 ‘K-문화 체험의 무대’로 브랜딩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한국을 여행하는 행위는 곧 K-팝, 드라마, 음식과 연결된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정체성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한국관광 브랜드자산 연구는 브랜드 인지도·이미지·연상·품질·충성도라는 5개 차원을 토대로, 한국 관광이 “흥미롭고 현대적인 도시·콘텐츠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

  •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으로의 관광 분산 전략은 “로컬과 자연을 즐기는 여행자”라는 새로운 정체성 모델을 제안하며, ​
  • 웰니스·의료관광·고급 숙박 개발은 “자기 돌봄과 프리미엄 경험을 중시하는 여행자상”을 이상적인 소비자로 상정합니다.​

한편, 국가브랜드에 관한 실증 연구들은 국가브랜드가 국가 이미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며, 도시적 이미지·경제·문화 이미지·환경 이미지 등이 관광객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국가가 어떤 정체성 축(도시성·자연·전통·혁신 등)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자국 여행에서 추구하는 가치 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한국 여행자에게 제시되는 ‘역할 모델’

한국의 여행 브랜딩은 국내 여행자에게도 몇 가지 대표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합니다.

  • K-콘텐츠 성지순례형: 드라마·예능 촬영지를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글로벌 팬덤의 일부”로 정의하는 여행자상​
  • 쇼핑·도시 소비형: 대도시의 쇼핑·푸드·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한국의 ‘도시적 이미지’를 체화하는 여행자상
  • 웰니스·로컬 경험형: 로컬 마을, 산·바다, 온천 등으로 이동해 “자연과 함께 회복하는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수행하는 여행자상

국가 정책과 캠페인은 이들 모델을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특히 MZ·Z세대에게 “이렇게 여행하는 것이 한국다운 것”이라는 규범을 형성합니다.

 

6. 국가가 설계하는 여행 정체성의 메커니즘

국가는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여행 정체성을 설계합니다.

  1. 서사 구성: 국가 홍보물과 관광 캠페인은 특정 이야기 구조를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에 지친 당신이 한국의 힐링 명소에서 회복한다”는 식의 서사는 개인의 피로·번아웃 경험을 전제로 하여, 여행을 통한 치유 서사에 자신을 대입하게 만듭니다.
  2. 상징 배치: 로고, 색, 슬로건, 대표 이미지(도시 스카이라인, 전통 건축, 자연경관 등)는 ‘이 나라다움’을 시각적으로 고정시키고, 국민이 자국을 떠올릴 때 특정 키워드와 감정을 자동으로 연상하게 합니다.
  3. 정책·인프라 정렬: 교통·숙박·관광 인프라는 특정 동선과 경험을 용이하게 만드는 반면, 다른 유형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도시 중심의 교통망과 콘텐츠 투자는 도시 소비형 여행을 기본값으로 설정합니다.
  4. 데이터 기반 재조정: 국가와 연구기관은 브랜드자산 평가, 관광객 설문, 온라인 반응 등을 분석해 현재 여행 정체성 서사가 얼마나 수용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캠페인과 정책을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욕구와 국가가 원하는 정체성 사이의 간극이 조정됩니다.

이처럼 국가의 여행 브랜딩은 상징과 서사, 정책과 데이터가 맞물린 복합적인 장치로 작동하며, 국민의 여행 경험을 구조화함으로써 정체성을 설계합니다.

 

7. 여행자의 주체성: 설계된 정체성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국가브랜딩 연구에서는 국가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며, 마케터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국가가 제시하는 여행자상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여행자가 수용·변형·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제안일 뿐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행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 제시된 서사를 비판적으로 읽기: 국가가 강조하지 않는 지역·주제(환경·노동·지역 불균형 등)에 주목하며, ‘보이지 않는 여행’의 의미를 재구성하기
  • 공식 캠페인을 재해석하기: K-콘텐츠나 웰니스 같은 국가 서사를 차용하되, 개인의 가치(지속가능성, 페미니즘, 로컬 연대 등)를 접목해 새로운 여행 이야기 만들기
  • 새로운 브랜딩의 생산자로 서기: SNS,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여행 언어와 이미지를 생산해, 국가가 상정한 모델을 넘어서는 대안적 여행 정체성을 확산하기

결국 여행 브랜딩 시대에 국가는 우리의 여행 정체성을 설계하려 하지만, 여행자는 그 설계도를 수정·덧쓰기 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공동 저자가 됩니다.

 

[도움 글·연구 출처]

  • 야놀자리서치, 「한국관광 브랜드자산 모델 개발 및 평가」, 2025.​
  • 야놀자리서치, 「한국관광 브랜드자산 평가 결과 및 전략 제안」 관련 인사이트, 2024–2025.
  • 오문영 외, 「관광객이 지각하는 국가 브랜드가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2024.​
  • Sritaragul, 「국가브랜딩과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태국 ‘Discover Thainess’ 캠페인 분석」 석사논문, 에라스무스 대학교, 2019 (한글표기 요약 참고).​
  • Dinnie, Qu, Zenker 등 국가브랜드·관광브랜딩 이론을 종합한 「Nation Brand and Tourism: Familiarity, Perception, and Intent to Visit」, 2022 (한글표기 요약 참고).​
  • 이연택 외, 「국가 브랜드의 언어·시각 커뮤니케이션 연구」, AOD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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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브랜드와 여행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