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속도를 내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보한 지역이 새로운 산업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환의 이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기존 내연기관·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밀집한 지역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그 지역 노동자와 주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RE100발 산업구조 전환이 만들어내는 지역 격차와, 그 격차가 왜 기존 복지·고용 안전망의 설계 원리로는 포착되지 않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RE100 산업단지, 지역경제의 새로운 축인가
정부는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며, 특별법 제정을 거쳐 2026년 조성 착수, 2030년 가동 완료라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새만금처럼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큰 지역이 반도체·이차전지·로봇 등 첨단 제조업 유치의 거점으로 재편되는 구상이며, 소득세·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과 지역별 차등 지원이 함께 검토되고 있습니다. 지방주도성장이라는 정책 기조 아래, 이 산단은 지역 균형발전과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새로운 거점이 들어서는 지역과,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기존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지역이 반드시 겹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업종별 고용전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자동차 산업의 공급망 재편 속도가 기업 규모별로 격차를 보이며 중소 협력업체가 밀집한 영남권역에서 산업전환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자율주행·배터리 시스템 분야에서는 인력 수요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전망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2. 기존 위기지역 제도가 놓치는 것 - 속도의 불일치
한국에는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이미 존재합니다.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그리고 조금 더 이른 단계에 개입하는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이 그것입니다. 여수의 석유화학, 포항의 철강, 광산구의 가전·타이어 업종이 최근 이 제도의 적용을 받아 왔고, 실직자 생계비 융자 확대나 기업 보증 한도 상향 같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설계 원리가 드러납니다. 즉 공장 폐쇄나 가동 중단처럼 특정 시점에 발생하는 사건형 충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고용위기지역·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의 대표 사례가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정 요건 자체가 지역 실업률 급증이나 특정 사업장의 폐업 같은, 이미 벌어진 결과를 확인한 뒤 발동되는 사후적 지표에 기대고 있습니다.
반면 RE100과 탈탄소 전환이 만들어내는 산업구조 변화는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연기관 부품업체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수주 물량이 서서히 줄고 협력사 재편이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점증적 침식에 가깝습니다. 최근 제도 개편으로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에서 대응특별지역으로 넘어가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이 신설된 것도, 지역경제 전반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다 지원이 늦어진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위기의 판정 시점을 조금 앞당긴 것일 뿐, 완만하게 진행되는 구조적 전환 자체를 포착하는 지표 체계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건형 제도로 침식형 위기를 다루려 하면, 지원이 필요한 시점과 제도가 발동되는 시점 사이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3. 공간적 탈구 - 새 일자리와 사라지는 일자리는 같은 곳에 있지 않다
두 번째 공백은 공간의 문제입니다. RE100 산업단지는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지역, 즉 일조량이나 풍력 조건이 좋은 특정 입지를 중심으로 조성됩니다. 반면 탈탄소 전환으로 타격을 받는 기존 산업, 이를테면 내연기관 부품, 석탄화력발전, 전통 제조업 협력사들은 전혀 다른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광업·제조업체 가운데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이 99.87%를 차지하고, 이들 중소기업 종사자만 112만 명이 넘습니다. 탄소중립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지역 고용의 절대다수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에서, 새로운 산업 거점으로의 이동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재훈련이나 재취업 지원 정책은 대체로 노동자가 새로운 직무나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설계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거, 가족 돌봄, 지역사회 관계망 때문에 이동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설령 이동한다 해도 그 지역의 복지 수급 이력이나 자격 요건이 그대로 이전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산업은 공간을 옮겨 재편되지만, 사회보장 체계는 그 이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탈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4. 정의로운 전환, 선언은 있었지만 이행은 더뎠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28기의 단계적 폐쇄 계획이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약속한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실적은 3년간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23년 제정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지원법 역시 노동계로부터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인 노동자 참여와 사회적 대화 절차가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원칙은 법률에 새겨졌지만, 그 원칙을 구체적 지원 체계로 옮기는 이행의 단계에서 계속 지체되어 온 셈입니다.
5. 삼축 프레임으로 본 개선 방향
이 문제를 재정지출·사회보험료·세입이라는 세 축으로 나누어 보면 방향이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재정지출 축에서는 위기지역 지정 요건을 사후 결과 지표뿐 아니라, 특정 업종의 수주 감소율이나 협력사 매출 추이 같은 선행지표까지 포함하도록 넓혀야 완만한 침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회보험료 축에서는 지역을 이동하는 노동자의 실업급여·직업훈련 수급 이력이 단절 없이 이어지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입 축에서는 RE100 산단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 일부를, 전환 충격을 받는 기존 산업 지역의 사회안전망 재원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합니다. 새로운 거점에 대한 지원과 뒤처지는 지역에 대한 지원이 하나의 재원 설계 안에서 함께 다뤄지지 않는다면, 산업구조 전환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지역 격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RE100은 기후 대응이자 산업 경쟁력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누가 이 전환의 비용을 먼저 감당하게 되는가라는 복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건형 위기에 맞춰진 제도로 침식형 전환을 다루고, 새 일자리가 생기는 곳과 사라지는 곳의 거리를 그대로 둔 채 재훈련만 강조한다면, 전환의 그림자는 가장 준비되지 않은 지역에 가장 오래 남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산업통상자원부·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RE100 산업단지 추진 계획 관련 보도자료 및 정책소식
- 고용노동부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 관련 보도(뉴스핌, 2026)
- 여수·광양·포항·광산구 고용위기지역·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 관련 지역 언론 보도(쿠키뉴스, 경북매일, 헤럴드경제 등, 2026)
- 지역산업위기대응법 시행령 관련 보도(이투데이, 2022)
-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 정의로운 전환 관련 정책 제안 자료(2024~2025)
-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실적 관련 국정감사 자료(박지혜 의원실, 더나은미래)
- 경기연구원 정의로운 전환 거버넌스 연구 자료(경기도 광업·제조업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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