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향한 정책 시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도만큼 빠르게 논의되지 못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정의로운 전환 특별법을 중심으로, 제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을 짚어보겠습니다.
1. 석탄화력발전, 왜 지금 폐지가 가속화되는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2038년까지 22기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입니다. 지역별 편차도 뚜렷합니다. 전국 61기의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충남에만 29기, 전체의 47.5%가 밀집해 있어 폐지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특정 지역이 감당해야 할 고용 충격이 압도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 흐름은 이미 되돌릴 수 있는 단계를 지났습니다. 남은 질문은 "폐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그 비용을 어떻게 나누어 감당할 것인가"입니다.
2. 폐지의 그림자 - 원청과 하청이 갈라지는 지점
발전소 폐쇄가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발전소 노동자의 상당수는 원청이 아닌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이며, 이들은 연료 운전, 경상정비처럼 사고 위험이 큰 업무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하루 평균 산업재해 사망자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위험은 이미 고용형태를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왔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노동자 사망 사고는 이 구조가 만든 비극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폐쇄 국면에서는 이 불균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석탄발전이 LNG발전으로 전환되더라도 필요 인력 자체가 줄어드는 데다,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가 주로 담당하는 연료·정비 분야에서 유휴인력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70%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습니다. 결국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지점과, 실제로 그 전환의 비용을 가장 먼저 떠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셈입니다.
3. 정의로운 전환 특별법, 무엇을 담았고 무엇을 놓쳤는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국회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발전사업자가 발전소를 폐지하려면 예정일 2년 전까지 고용안정 및 재배치 계획, 지역경제 영향조사 결과를 담은 폐지계획을 정부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폐쇄를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으로 방치하지 않고, 국가 전력시스템 차원에서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접근입니다.
다만 이 법의 설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저는 여기에 일종의 '속도 불일치'가 내재해 있다고 봅니다. 법이 요구하는 2년이라는 시차는 원청 정규직의 인사 발령이나 자회사 전환 같은 절차에는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지만, 협력업체와의 도급계약은 훨씬 짧은 주기로 갱신되거나 종료됩니다. 즉 제도가 상정하는 조정 속도와 하청 고용시장이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 사이에 근본적인 격차가 있는 것입니다. 이 격차가 메워지지 않으면, 법률상의 "노동자 고용안정 계획"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절차적 정의에 머무르고, 정작 위험을 가장 크게 감당해온 하청 노동자에게는 실질적으로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환경단체가 이 법을 두고 폐지 부지를 원전 등 다른 발전원으로 채우기 위한 산업 진흥법에 가깝다고 비판한 것도, 결국 노동자의 다음 일자리보다 설비의 다음 용도가 먼저 설계되고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 독일 루사티아의 교훈
한국보다 먼저 탈석탄을 결정한 독일의 경험은 참고할 지점과 동시에 경계할 지점을 함께 보여줍니다. 독일 정부는 2038년까지 석탄 광산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400억 유로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고, 유럽연합도 별도로 정의로운 전환기금을 통해 독일에 8억 7,700만 유로를 추가 배정했습니다. 특히 8,300명이 직접 고용되어 있고 약 5,000명이 간접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파악된 루사티아 지역은 이 지원의 핵심 대상지로 꼽혀 왔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지원의 속도 문제는 반복됩니다. 라인란트 지역의 지자체와 상공회의소들은 정부 지원금의 상당액이 이미 배분되었음에도 "일자리는 이미 사라졌고, 젊고 교육받은 인구는 이미 떠나기 시작했는데 지원의 효과는 그보다 늦게 나타난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바 있습니다. 독일의 탈석탄 대상은 광업이라는 비교적 단일하고 정규직 비중이 높은 직군이었음에도 이런 시차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은, 원청과 하청이라는 이중구조 위에서 전환이 진행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같은 규모의 재정 투입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5. 정의로운 전환이 정의로우려면
결국 정의로운 전환의 성패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설계의 대상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특별법 시행 과정에서 고용안정·재배치 계획의 실질적 수혜 대상에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이를 폐지계획 승인의 조건으로 연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재교육과 재배치에 필요한 재원을 산업전환 고용안정 지원 관련 법제 및 고용보험기금과 명확히 연계함으로써, 누가 그 비용을 분담하는지를 사전에 설계해야 합니다. 이는 앞서 이 블로그에서 다뤄온 'welfare-financing-series'의 삼축 프레임 가운데 사회보험료 축의 지속가능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셋째, 지역에 새로 유치되는 대체산업이 실제로 기존 하청 노동자의 숙련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인지를 사전에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설비만 바뀌고 사람이 남는 방식의 전환은, 아무리 법의 이름에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도 그 실질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탄소중립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방향입니다. 다만 그 방향이 옳다는 사실이, 그 과정에서 누가 먼저 그리고 더 크게 대가를 치르는지를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참고자료]
- 서울신문, 「석탄화력폐지 대책, 노동자 참여해야」(2026.5) -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8년까지 22기 폐지, 충남 29기(47.5%) 집중 현황
- 에너지데일리, 「석탄발전 폐지 '발전소만 닫고 끝' 막는다…정의로운 전환 특별법 국회 통과」 등(2026.7~8) - 특별법의 폐지 2년 전 계획 제출 의무, 고용안정·재배치 계획, 지역경제영향조사 내용
- 녹색연합 성명(2026.5, 2026.9) - 특별법의 핵발전 확대 연계 우려 및 조기 탈석탄 요구
- 세계일보, 「발전소 10명 중 4명 하청 비정규직」 - 발전 비정규직 비율 및 산재 사망 비율 통계
- 프레시안, 「일자리 대책 없이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비정규직 70% 실직」(류호정 의원실 연구용역) - 폐쇄 시 예상 실직 규모 및 비정규직 비율
- Clean Energy Wire - 독일 탈석탄 지원기금(최대 400억 유로) 및 EU 정의로운 전환기금의 독일 배정액(8억 7,700만 유로), 루사티아·라인란트 지역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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