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급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연기관 부품 하나로 생계를 이어온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동화가 만드는 고용 충격의 실체를 짚어보고, 지금의 지원 정책이 왜 정작 이들에게 닿지 못하는지, 그 구조적 원인과 대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숫자로 보는 충격의 크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현저히 적습니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필요 부품 수가 30% 이상 적어 공정에 필요한 인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한 최근 분석에서는 엔진 부품 6,900개가 전량 사라지고 구동·전달 부품은 5,700개에서 3,600개로, 전자장비 부품은 3,000개에서 900개로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변화이며, 같은 분석은 2030년까지 경남 도내 내연기관 부품기업 912곳 가운데 346곳, 약 37.9%가 소멸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문제는 전환 준비가 이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2025년 자동차 부품산업 실태조사에서는 국내 부품업체 가운데 미래차 관련 사업 전환이나 다각화를 추진한 기업이 6.1%에 불과했고, EY한영 조사에서도 부품사 400곳 중 74%가 미래 사업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변했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 설명 자료 역시 국내 자동차 부품사 2만여 곳 가운데 미래차 전환이나 다각화를 추진하는 곳이 6% 수준에 그친다는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편 완성차 노동조합 진영의 전망은 더 구체적입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보고서는 2030년 전기차 생산 비중이 25%에 이를 경우 완성차 생산직 근로자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고, 부품업계 대상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42.5%가 향후 5년간 인력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 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체 통계는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부품 제조업 종사자는 총 25만 7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100명(1.7%) 증가했습니다. 다만 이는 전자제어·배터리 등 전기차 관련 부품 일자리가 늘어난 결과일 뿐, 전통적인 내연기관 엔진 및 엔진용 부품 제조 사업체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3%씩 줄어드는 추세는 그대로입니다. 바로 이 '전체는 늘지만 특정 부문은 준다'는 통계의 착시가, 이 글에서 짚고자 하는 정책 공백의 출발점입니다.
2. 원 프레임: "전환의 이중 트랙 불일치"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산업정책 트랙(전환지원기금, 세액공제, R&D 지원)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정책 트랙(노동전환지원금, 전직지원서비스)입니다. 문제는 이 두 트랙이 독립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트랙이 첫 번째 트랙의 작동을 전제로 한 종속적 구조라는 데 있습니다. 이를 "전환의 이중 트랙 불일치"라 부를 수 있습니다. 기업이 전환에 나서지 않으면, 그 기업에 속한 근로자는 애초에 지원 대상 명단에 오르지도 못하는 구조입니다.
이 불일치는 세 단계의 구체적인 공백으로 나타납니다.
1단계: 전환율의 공백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래차 전환을 시도한 부품기업은 전체의 6% 수준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4%는 전환 지원 정책의 설계 대상 밖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이미 첫 번째 공백이 발생합니다. 산업정책이 '전환에 나선 기업'을 지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한, 전환할 여력조차 없는 다수의 영세 부품기업과 그 소속 근로자는 정책의 시야 자체에 잡히지 않습니다.
2단계: 신청 구조의 공백
두 번째는 실제 근로자 지원 제도의 설계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현행 일자리전환 지원금은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관련 기업의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에게 직무심화·전환·재배치·적응을 위한 훈련 및 전직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이를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즉 신청 주체가 근로자 본인이 아니라 사업주입니다. 지원 대상도 최근 3년 이내 사업재편·사업전환 승인기업, 산업·일자리전환 컨설팅 참여기업,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업체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폐업 위기에 몰려 신청서를 작성할 여력조차 없는 영세 부품업체는 이 트랙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전환 지원이 가장 절실한 기업일수록 지원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3단계: 통계의 공백
세 번째는 통계 집계 방식이 만드는 공백입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 전체 고용은 전자제어·배터리 부문의 성장으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총량 지표는 내연기관 전문 업체와 그 근로자가 겪는 축소를 가려버립니다. 정책 논의가 업종 전체의 고용 총량을 근거로 "아직 위기가 아니다"라고 판단한다면, 실제로 소멸 위험에 처한 기업의 근로자들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나게 됩니다.
3. 국내 정책의 최근 흐름
이런 문제의식은 최근 입법 움직임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정부 재정과 민간 출연금을 모아 기술개발, 설비 전환, 사업화, 전문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기금에 출연한 기업에는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미래차 부품산업 전환지원기금 신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관련 법안은 기업이 2031년 12월 31일까지 전환지원기금에 출연할 경우 출연금의 1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노동계 참여를 명문화하려는 개정안입니다.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 개정안은 미래차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전직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 노동계 참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재원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책무를 명시했습니다. 산업정책 트랙에 노동자 몫을 명문으로 끼워 넣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앞서 지적한 이중 트랙 불일치를 제도적으로 좁히려는 방향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개정안이 실제로 근로자 개별 신청 경로까지 열어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4. 해외 사례: 독일 IG Metall의 '전환 단축근로수당' 구상
참고할 만한 해외 모델로는 독일 금속노조 IG Metall이 제안한 '전환 단축근로수당'이 있습니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독일이 활용했던 단축근로제의 틀을 산업 전환기에 맞게 응용한 구상으로, 수주 감소로 인한 조업 단축과 재직 중 직무 재훈련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기업이 인력을 즉시 감축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확보된 시간에 새로운 기술을 훈련시키도록 정부가 임금 손실분을 보전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 모델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지원의 단위를 '전환에 성공한 기업'이 아니라 '전환 과정에 있는 근로자 개인'으로 옮기면, 기업의 전환 성패와 무관하게 근로자의 소득과 숙련이 동시에 보호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5. 정책 제언: 근로자 중심 통로가 필요
이중 트랙 불일치를 완화하려면 다음 세 가지 방향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 첫째, 사업주 신청이 어려운 영세·소멸위기 부품기업 근로자를 위한 개별 신청형 전직지원 경로를 별도로 마련해야 합니다. 사업주의 신청 역량과 근로자의 지원 자격이 분리되지 않는 한, 가장 취약한 근로자가 가장 먼저 배제되는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 둘째, 자동차 부품업체가 밀집한 지역 단위로 통합지원센터를 두어, 재훈련·전직알선·생활안정자금을 원스톱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환지원기금이 기업의 설비와 기술에 투입되는 것과 별도로, 지역 노동시장 단위에서 근로자의 재취업 경로를 설계하는 축이 함께 가동되어야 합니다.
- 셋째, 통계 집계 단위를 업종 전체가 아니라 '내연기관 특화 부품기업'으로 세분화해, 전체 고용 총량의 착시 뒤에 가려진 위기 집단을 조기에 식별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welfare-financing-series]에서 반복해서 짚어온 재원조달 구조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전환지원금의 재원은 고용보험기금, 즉 사회보험료 축에서 나오는데, 정작 보험료를 낼 여력조차 흔들리는 영세 부품기업 근로자에게 그 혜택이 역진적으로 닿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정책과 노동정책, 그리고 그 재원조달 방식이 따로 설계되는 한, 전동화의 그늘은 정책의 사각에서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자료]
- 이데일리, 「전기차 전환에 車업계 인력감축 바람…"노사정, 머리 맞대야"」 – 전기차 부품 수 감소 및 전국금속노동조합·KAMA 조사 자료
- 경남도민일보, 「전기차 전환에 경남 자동차부품 10곳 중 4곳 '소멸 위험'」 – 경남 지역 부품 수·기업 소멸 위험 분석, 한국자동차연구원·EY한영 조사
- 네이트뉴스, 「전기차 확산에도…車부품 일자리 늘었다」 – 한국고용정보원 「자동차 부품 제조업 산업·일자리 전환 지도」 통계
- 에너지데일리, 「미래차 전환률 6% 그친 부품업계…전용기금·세액공제로 '전환 절벽' 넘는다」 및 「미래차 전환에 '고용안전망' 담는다… 노동계 참여 의무화 추진」 – 전환지원기금 및 특별법 개정안 관련 보도
- MSN, 「이재관, 미래차 부품산업 전환지원기금 신설 법안 발의」 –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세부 내용
- bsjob4u.co.kr, 「일자리전환 지원금」 안내 – 고용노동부 지원사업 신청 요건
- IG Metall, 「Faktenblatt: Das Transformationskurzarbeitergeld」 – 독일 금속노조의 전환 단축근로수당 제안 자료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RE100과 산업구조 전환, 뒤처지는 지역과 복지 사각지대 (0) | 2026.09.26 |
|---|---|
|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 - 석탄화력발전 노동자는 어디로 가는가 (0) | 2026.09.25 |
| 자율주행이 바꿀 운수업 생태계, 택시·화물기사 복지대책은 준비됐나 (0) | 2026.09.24 |
| 물류창고 자동화와 플랫폼 노동자·사라지는 일자리의 재배치 문제 (0) | 2026.09.23 |
| 로봇세 도입 논쟁 10년 - 유럽연합은 왜 포기했고 한국은 다시 꺼내드는가 (0) | 202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