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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웹툰·게임 산업 청년 노동자, 크런치 모드와 노동복지의 공백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10. 9.

K-콘텐츠의 성공 뒤에는 마감일에 맞춰 밤을 새우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크런치를 흔히 말하는 개인의 열정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 문제로 보고, 게임과 웹툰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1. 크런치 모드란 무엇이고, 게임업계의 현실은 어떨까요?

크런치 모드는 신작 출시나 테스트를 앞두고 연장·야간 근무를 장기간 이어가는 업계 관행을 말합니다. 이 관행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포괄임금제입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시간외수당을 월급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이고, 게임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습니다. 야근을 해도 추가 보상이 없으니 '공짜 야근'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집니다.

 

통계를 보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2017년 게임개발자연대와 정의당 IT노동상담센터가 낸 실태조사에서 종사자의 84.2%가 크런치를 경험했고, 평균 70일 동안 하루 14.4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9년 전 수치라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는 크런치 경험 비율이 2019년 60.6%, 2020년 23.7%, 2021년 15.4%로 줄었습니다. 다만 두 조사는 표본과 질문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렵고, 이 감소가 모두 현장의 개선인지 응답 환경의 변화까지 섞인 것인지도 수치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같은 백서의 다른 숫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5인 미만 회사 종사자의 48.3%가 크런치를 경험했고, 그때 주 평균 61.4시간을 일했습니다. 평균이 좋아지는 동안에도 작은 회사에서는 장시간 노동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법의 구조가 겹칩니다.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장근로 가산수당과 근로시간 한도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장 보호가 필요한 곳이 법의 바깥에 있는 셈입니다.

 

2. 웹툰 작가와 어시스턴트의 노동환경: 시간은 있는데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웹툰은 게임과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게임 노동자는 근로자 신분은 확실한데 시간이 측정되지 않습니다. 웹툰 작가는 시간이 너무 선명한 대신 신분이 불분명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작가 504명)를 보면, 응답자의 84.3%가 작품별 연재 계약으로 활동했습니다. 86.3%는 4대보험에 하나도 가입하지 않았고, 하나라도 가입한 경우는 5.0%에 그쳤습니다. 1년 내내 연재한 작가의 연 수입 중간값은 약 3,500만 원이었습니다.

 

노동 강도를 보여주는 자료도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웹툰 작가의 일 평균 창작 활동 시간은 10.5시간이고, 14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17%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사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참고 일한 경험이 40.7%, 우울증 경험이 28.7%, 불면증 경험이 28.2%로 나타났습니다. 주간 연재라는 마감 구조가 사실상 상시 크런치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에게 딸린 어시스턴트의 처지는 더 취약합니다. 이들은 작가 개인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플랫폼의 보호 장치 바깥에 놓이기 쉽습니다. 제가 확인한 공개 자료에서는 어시스턴트만 따로 집계한 최신 통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조사 자체가 비어 있다는 점이 이미 하나의 공백입니다.

 

3. 두 개의 공백, 그리고 그 밑에 있는 하나의 뿌리

여기서부터는 제 의견입니다. 게임과 웹툰의 문제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게임은 '시간의 공백' - 근로자이기는 한데 몇 시간을 일했는지 기록되지 않으니, 보상도 제한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 웹툰은 '신분의 공백' - 일한 시간은 분명한데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나 계약 당사자로 분류되어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입구에서 막힙니다.

이 두 공백은 서로 다른 제도의 틈에서 생기지만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복지의 단위가 '사업장'과 '근로자'인데, 이 산업의 노동은 '프로젝트'와 '작품' 단위로 움직입니다. 보호의 단위와 노동의 단위가 어긋나 있는 것입니다. 한 게임이 출시되면 팀이 해체되고, 한 작품이 완결되면 계약이 끝납니다. 사업장 중심의 제도는 이 짧고 반복되는 주기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여기에 청년이라는 변수가 더해집니다. 저는 이것을 '경력 인질 구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가상의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입사 3년 차 개발자가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출시되면 포트폴리오에 한 줄이 생기고, 그 한 줄이 다음 이직의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크런치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경력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이 됩니다. 웹툰 작가에게는 연재 중단이 곧 작가 경력의 공백입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대가로 미래의 경력을 담보로 잡히는 셈이고, 이 거래는 '열정'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자발적 선택처럼 보입니다. 크런치를 열정의 문제로 부르는 순간 정책 논의는 끝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 포괄임금제 지침과 법안: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요?

제도의 움직임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에도 게임업계에 포괄임금제 시정을 지시한 적이 있지만 관행이 이어졌다는 보도가 있었고, 2026년 4월 9일부터는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침에서는 기본급과 수당을 구분하지 않는 정액급제와 시간외수당을 묶어 지급하는 정액수당제를 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제시했고, 고정 연장수당(고정OT)을 약정했더라도 실제 법정수당이 더 많으면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안내합니다.

 

법 개정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포괄임금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9건이 국회에 올라와 있고, 제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2026년 9월 기준으로도 계류 중이라고 합니다. 최종 처리 여부는 게시 시점에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노사정 합의가 반영된 김주영 의원안은 사용자가 임금대장에 근로일별 시간을 적도록 하고, 정액 약정을 허용하더라도 실제 시간에 따른 가산임금보다 적으면 차액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이 개정은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장치일 뿐, 웹툰의 '신분의 공백'에는 닿지 않습니다. 앞서 본 5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 제외 문제도 남습니다.

 

5. 삼축 프레임으로 본 노동복지의 공백

제가 복지 재정을 볼 때 쓰는 세 축(세입, 사회보험료, 재정지출)에 이 문제를 놓아보겠습니다.

  • 사회보험료 축 - 가장 직접적인 공백입니다. 4대보험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나누는 구조인데, 계약 형태의 작가는 보험료 전액을 스스로 부담하거나 아예 가입하지 않게 됩니다. 사용자 기여분이 없으니 가입 유인이 사라집니다. 소득 기반 보험료 부과와 제작사·플랫폼의 기여를 결합하는 설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재정지출 축 - 콘텐츠 산업 지원은 제작비, 수출, 인재 양성 쪽에 쏠려 있다는 것이 제 인상입니다. 정확한 비중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직접 수치를 찾아 보강하시길 권합니다. 산업의 외형을 키우는 지출과 일하는 사람의 안전망을 두껍게 하는 지출은 다릅니다.
  • 세입 축 - 산업이 거두는 수익이 노동의 안정으로 환류되는 경로가 약하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수익은 IP에 쌓이는데 위험은 개인에게 쌓입니다.

 

6.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네 가지 제안

  1. 크런치 사전 신고와 총량 공시 - 시간 기록 의무를 한 단계 확장해, 프로젝트 단위로 예상 연장근로 총량을 사전에 신고하고 사후에 공시하게 하면 어떨까요. 크런치가 '예외'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됩니다.
  2. 크런치 이후 회복 보상 -  금전 보상만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으므로, 일정 시간을 넘긴 프로젝트에는 보상휴가를 의무적으로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3. 웹툰 계약의 보호 장치 -  표준계약서를 권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휴재나 건강 문제 시 소득을 보전하는 공동 기금을 플랫폼 수익에서 일부 적립하는 방식을 검토할 만합니다.
  4. 프로젝트 단위 사회보험 설계 -  근로자 여부를 먼저 따지기 전에, 작품과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징수하고 사용자 측이 일부를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이나 노무제공자 대상 보험을 확장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가입 요건이 현장의 계약 방식과 맞는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괄임금제는 이제 불법인가요?

  • 지침이 시행되고 있지만, 포괄임금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 개정은 제가 확인한 시점에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침에 따라 현장 점검 기준은 이미 강화된 상태입니다.

Q. 웹툰 작가도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 계약 형태와 실제 업무 지시의 정도에 따라 개별 판단이 필요합니다. 일률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신분 판단의 기준 자체가 쟁점입니다.

Q. 5인 미만 게임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가산수당과 근로시간 한도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계약서의 임금 구성과 근로시간 약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필요하면 노동상담 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크런치는 개인의 의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시간은 측정되지 않고 신분은 불분명한 제도 속에서 청년의 미래 경력이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에 계속됩니다. 산업이 세계로 나아가는 만큼 그 산업을 만드는 사람의 안전망도 같은 속도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 2017 게임산업종사자 실태조사(게임개발자연대·정의당 IT노동상담센터, 보도 인용): 종사자의 84.2%가 크런치를 경험했고, 연 평균 70일, 하루 평균 14.4시간 근무. (시대일보, 2017.8.)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노컷뉴스 보도 인용): 크런치 경험 비율 2019년 60.6% → 2021년 15.4%. 5인 미만 회사 종사자는 48.3%가 경험, 주 평균 61.4시간. (노컷뉴스)
  • 포괄임금제 관행(머니투데이, 2024.10.): 2019년 고용노동부 시정 지시 이후에도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는 보도.
  •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침(2026.4.9. 시행)과 법안 현황: 정액급제·정액수당제를 지양하도록 제시하고, 고정OT 약정액이 실제 법정수당보다 적으면 차액 지급. 근로기준법 개정안 9건이 국회 계류 중이며 2026년 9월 기준으로도 계류 중이라는 업계 블로그 안내가 있음. 김주영 의원안은 임금대장에 근로일별 시간 기재, 정액 약정 시 차액 지급을 담음. (한국경제, 매일노동뉴스, 법무법인 신김 뉴스레터, 모두싸인 블로그)
  • 2019 웹툰 작가 실태조사(문체부·한국콘텐츠진흥원): 작가 504명 대상. 연재 계약 84.3%, 4대보험 미가입 86.3%, 하나라도 가입 5.0%, 1년 연재 시 연 수입 중간값 약 3,500만 원. (파이낸셜뉴스 보도)
  • 웹툰 작가 노동 강도 조사(벤처스퀘어 보도 인용): 일 평균 창작 활동 10.5시간, 14시간 이상 17%.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사에서 건강 문제를 참고 일한 경험 40.7%, 우울증 28.7%, 불면증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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