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누구를 근로자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회보험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해외 국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를 세 가지 설계 방식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한국의 소득기반 전환이 어디에서 막히는지 제 관점에서 짚어보겠습니다.
1. 임금 중심 사회보험이 플랫폼 앞에서 멈추는 이유
전통적인 사회보험은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있고, 사용자가 임금에서 보험료를 떼어 대신 납부한다는 전제입니다. 보험료를 걷는 지점(징수점)과 위험이 발생하는 지점(노동)과 급여를 받을 자격(가입)이 모두 '고용관계'라는 하나의 매듭으로 묶여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다룬 비스마르크식 설계가 지금까지 작동해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플랫폼 노동은 이 매듭을 풉니다. 일감은 앱이 배분하지만 계약서에는 '사업자'라고 적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플랫폼에서 건 단위로 일하며, 소득은 달마다 요동칩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 사례를 볼 때 "얼마나 보장하느냐"보다 "보험료를 어디에 걸어서 걷느냐"를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를 '징수 앵커'라고 부르겠습니다. 해외 설계를 들여다보면 앵커가 크게 세 곳으로 갈립니다. 지위, 소득, 거래입니다.
2. 지위 앵커: 분류 싸움의 부담을 플랫폼에 돌린 EU와 스페인
첫 번째 방식은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바로잡아 기존 사회보험에 편입시키는 길입니다. 유럽연합이 2024년 채택한 플랫폼노동지침(Directive 2024/2831)이 대표적입니다. 이 지침의 핵심은 플랫폼이 업무 배분, 성과 감시 등 '지시와 통제'를 행사하는 사실이 있으면 고용관계로 추정한다는 반증 가능한 법적 추정 규정입니다. 회원국의 국내법 반영 시한은 2026년 12월 2일입니다.
이 설계의 영리한 점은 입증 책임의 방향을 바꿨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 소송으로 자신이 근로자임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플랫폼이 자영업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스페인은 이미 2021년 라이더법(Act 12/2021)으로 배달 플랫폼에 같은 취지의 추정을 도입했고, 포르투갈은 2023년 5월부터 모든 디지털 플랫폼으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다만 저는 이 방식을 만능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추정은 '입구'를 넓힐 뿐 소득이 불규칙한 사람의 보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둘째, 이행 속도가 느립니다. 2026년 5월 시점의 보도에서는 국내법 초안을 갖춘 나라가 이탈리아 정도였고, 네덜란드는 6월 말에야 법안 초안을 공개해 8월 말까지 의견을 받았으며 시한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지위 앵커는 정당성은 높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입니다.
3. 소득 앵커: 지위를 묻지 않고 '실제 소득'에 보험료를 건 스페인
두 번째 방식은 지위 논쟁을 건너뛰고 소득 자체에 보험료를 연결하는 길입니다. 스페인은 2023년 자영업자 특별제도(RETA) 개혁으로 보험료를 실제 순소득에 연동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영업자가 법정 상·하한 사이에서 기준 금액을 사실상 자유롭게 골랐는데, 개혁 이후에는 연간 예상 순소득을 신고하고 15개 구간 중 해당하는 곳의 기준액을 적용받습니다. 도입 이후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최종 모형에 접근하는 9년짜리 이행기를 두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제가 이 사례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장치는 사후 정산입니다. 신고한 예상소득으로 잠정 보험료를 내고, 이듬해 세무당국의 실제 소득 자료와 대조해 차액을 정산합니다. 소득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에게 '지금 소득'을 정확히 요구하는 대신 '나중에 맞추는' 구조를 만든 셈입니다. 또 자영업자의 절반가량이 월 670유로 이하의 소득을 신고하는 현실에서, 저소득 구간의 보험료를 낮추고 고소득 구간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간표를 짰다는 점에서 소득기반 설계가 곧 역진성 완화 장치로도 작동합니다.
그러나 소득 앵커에는 구조적 약점이 있습니다. 보험료 전액을 개인이 부담하기 때문에 '플랫폼의 몫'이 비어 있다는 점입니다. 임금노동에서는 사용자가 절반을 내지만, 소득 앵커만으로는 일감을 준 쪽의 기여가 사라지고 보험료 부담이 노동자에게 전가됩니다. 소득기반이라는 말이 때로 '자영업자에게도 똑같이 내게 한다'는 뜻으로 소비되는 것이 저는 경계됩니다.
4. 거래 앵커: 건별로 떼어 걷는 싱가포르의 플랫폼노동자법
세 번째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싱가포르는 2025년 1월 플랫폼노동자법을 시행하며 승차공유·배달 노동자를 근로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새로운 범주로 만들었습니다. 핵심은 플랫폼 운영자가 노동자의 수입에서 중앙적립기금(CPF) 기여금을 원천공제해 매달 납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거래 앵커입니다. 소득을 신고받는 대신, 일감이 오가는 지점에서 바로 걷습니다.
설계의 세부 사항이 이 모델의 성패를 가르는데,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 세대별 차등 적용: 1995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는 의무 적용이고, 그 이전 출생자는 선택 가입(opt-in)입니다.
- 플랫폼 몫의 단계적 상향: 플랫폼과 노동자의 기여율이 5년에 걸쳐 근로자·사용자 수준으로 맞춰집니다.
- 정부의 이행 지원: 저소득 노동자의 기여율 인상분을 정부가 전액 보전하는 것으로 시작해 지원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여 2028년에는 25%까지 낮춥니다.
여기에 산재 성격의 보호도 운영자가 근로자와 같은 수준으로 가입시켜 주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소득 파악의 행정 부담이 플랫폼으로 옮겨갔고, 노동자는 신고 절차 없이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장밋빛만은 아닙니다. 제도 시행 직후 보도에서도 기여금 때문에 당장의 실수령액이 줄어든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선택 가입으로 남은 고령 노동자는 플랫폼 몫을 받지 못하는 구조여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출생연도에 따라 보호 수준이 갈리는 새로운 이중구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적용 대상이 승차공유와 배달 직종에 한정된다는 점도 한계입니다. 거래 앵커는 구조상 '플랫폼 안에서 벌어진 거래'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다중 플랫폼 종사자나 플랫폼 밖 소득은 놓치게 됩니다.
5. 세 가지 앵커, 한눈에 비교
| 구분 | 지위 앵커 | 소득 앵커 | 거래 앵커 |
| 대표 사례 | EU 플랫폼노동지침, 스페인 라이더법 | 스페인 RETA 개혁 | 싱가포르 플랫폼노동자법 |
| 보험료 걸리는 곳 |
고용관계(추정) | 순소득(신고·정산) | 건별 수입(원천공제) |
| 강점 | 기존 사회보험으로 편입, 사용자 몫 확보 |
지위 논쟁 회피, 불규칙 소득 대응 |
소득 파악 부담의 플랫폼 이전 |
| 약점 | 입법·이행 지연, 소득 변동성 미해결 | 플랫폼 몫 부재, 신고 의존 | 플랫폼 밖 소득 누락, 직종 한정 |
제 판단으로는 세 방식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층위가 다른 도구입니다. 지위 앵커는 '누가 사용자 몫을 지는가'를, 소득 앵커는 '불규칙한 소득을 어떻게 보험료로 바꾸는가'를, 거래 앵커는 '누가 소득을 파악하고 걷는가'를 각각 답하는 장치입니다. 성공적인 설계는 이 세 질문에 모두 답해야 하는데, 한 나라가 한 앵커만 쓰면 반드시 구멍이 납니다.
6. 한국의 소득기반 전환에 주는 시사점 3가지
한국은 2020년 12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하며 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로 적용을 넓히고 고용보험 관리체계를 임금에서 소득정보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협의의 플랫폼 종사자를 약 22만 명, 광의로는 약 179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이후 직종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적용이 확대되어 왔지만, 소득기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앞서 살펴본 해외 사례에 비추어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 첫째, 소득 파악의 병목은 '신고'가 아니라 '정산'입니다. 한국에서 소득기반 논의는 흔히 "소득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서 멈춥니다. 스페인의 교훈은 파악보다 정산 구조에 있습니다. 잠정 보험료를 내고 이듬해 세무 자료로 맞추는 방식은 소득 변동성을 제도 안에 흡수합니다. 이미 국세 소득 자료가 있는 한국이 오히려 이 방식을 도입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 둘째, 소득기반이 '노동자 단독 부담'이 되지 않도록 플랫폼의 몫을 설계해야 합니다. 싱가포르가 플랫폼 몫을 5년에 걸쳐 올리고 정부가 이행 지원으로 충격을 완화한 것은, 사용자 몫이 사라진 보험은 곧 역진적 보험료가 된다는 점을 정확히 이해한 설계입니다. 한국의 사회보험료 축 논의에서도 '노사 공동 부담'의 원리를 플랫폼과 노동자 사이에 어떻게 이식할지가 쟁점이 되어야 합니다.
- 셋째, 직종 열거 방식에서 벗어나 앵커를 겹쳐 써야 합니다. 산재보험 전속성 논쟁에서 보았듯, 직종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은 '사고가 터진 뒤 대응하는 입법'에 머무릅니다. 싱가포르조차 승차공유와 배달에 범위를 한정해 비슷한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지위 추정으로 입구를 넓히고, 소득 정산으로 변동성을 흡수하며, 플랫폼 원천공제로 행정 부담을 덜어주는 식의 복합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를 앞서 제시해온 3축 프레임으로 정리하면, 사회보험료 축에서는 플랫폼 몫과 사후 정산 구조를, 재정지출 축에서는 전환기 보험료 지원(싱가포르의 단계적 감축 모형)을, 세입 축에서는 세무 소득 자료와 사회보험 부과의 연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7. 어떤 앵커를 고르느냐가 곧 누가 위험을 지느냐입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완벽한 모델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위 앵커는 느리고, 소득 앵커는 노동자에게 기울며, 거래 앵커는 범위가 좁습니다. 결국 소득기반 사회보험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이 만든 위험을 누가 얼마만큼 질 것인가"라는 분배의 문제입니다. 한국이 서둘러야 할 것은 정교한 소득 파악 시스템 이전에, 이 분배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 프리랜서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나요?
- A. 현재는 특고 등 법에서 정한 직종의 노무제공자에게 적용되며, 사업자등록만으로 사업소득을 얻는 순수 프리랜서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실업급여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세한 가입 이력은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EU 플랫폼노동지침은 모든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만드는 것인가요?
- A. 아닙니다. 고용관계가 있다고 추정하되, 플랫폼이 반증하면 자영업자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입증 책임이 플랫폼 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Q. 싱가포르 방식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나요?
- A. 중앙적립기금(CPF)이라는 개인 계좌 방식의 제도이므로 기여금이 소멸성 보험료와 성격이 다릅니다. 플랫폼 원천공제와 이행 지원 구조만 참고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참고자료]
- 싱가포르 인력부(MOM), 플랫폼노동자법 시행 보도자료(2024.12): 2025년 1월부터 CPF 기여금, 산재 보상, 대표권 보장이 도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는 의무 적용, 이전 출생자는 선택 가입이라고 안내합니다. 저소득 선택 가입자에게는 2025년 기여율 인상분을 전액 보전하는 이행 지원이 제공됩니다.
- Roedl & Partner 등 법률사무소 해설(2025.2):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승차공유와 배달 서비스를 수행하는 플랫폼 노동자로 한정되며, 운영자가 근로자보상법과 같은 수준의 산재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 Dollars and Sense 등 싱가포르 매체: 기여율이 5년에 걸쳐 근로자·사용자 수준으로 수렴하고, 이행 지원이 2025년 100%에서 2028년 25%로 점차 줄어든다고 설명하며, 실수령액 감소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전합니다.
- Cuatrecasas, Garrigues 등 스페인 법률사무소 해설: EU 지침(2024/2831)의 반영 시한이 2026년 12월 2일이며, 반증 가능한 고용 추정과 알고리즘 관리 규율이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스페인은 2021년 라이더법에 배달 플랫폼 대상 추정을 두었고, 포르투갈은 2023년 5월부터 모든 플랫폼에 적용했습니다.
- Houthoff, Global Workplace Insider(2026.9) 등: 네덜란드 정부가 2026년 6월 29일 이행 법안 초안을 공개했고 의견 수렴이 8월 24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시한 내 반영이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인정했다고 전합니다.
- Welex, Grant Thornton Spain 등 스페인 자영업자 개혁 해설: 2022년 왕령(RDL 13/2022)에 따라 2023년부터 실제 순소득 연동 15개 구간제가 도입되었고, 2032년까지 이행기를 두며, 잠정 기준액은 이듬해 세무 자료로 정산된다고 정리합니다. Social Security 통계상 스페인 자영업자 340만 명 중 절반이 월 670유로 이하 소득을 신고한다는 수치도 인용되었습니다.
- 뉴시스, 고용노동부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2020.12.23): 2025년까지 고용보험 가입자 2,100만 명을 목표로 특고·플랫폼·자영업자로 적용을 확대하고, 고용보험 관리체계를 소득정보 기반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을 보도합니다. 플랫폼 종사자는 협의로 약 22만 명, 광의로 약 179만 명으로 추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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