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더 이상 ‘잠깐 쉬었다 오는 소비 행위’로만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실천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관광객을 넘어 삶의 태도와 정체성까지 바꾸어 가는 여행자로 서서히 이동하게 됩니다.
1. 문제 제기: 관광객에서 ‘여행자’로의 전환
전통적인 관광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찍고’ 오는 효율성과 소비 중심의 패턴에 의해 정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오버투어리즘, 지역공동체 피로감이 전 세계적으로 가시화되면서, 이러한 소비 중심 관광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경·지역·로컬 문화를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이 하나의 윤리적 기준이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관광객'에서 '여행자'로의 정체성 전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특히 지속가능한 여행 실천이 개인의 삶의 태도와 환경·사회적 자기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이론적 배경: 관광과 정체성, 그리고 지속가능성
2-1. 관광과 정체성 생산
관광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연출하고 구성하는 현대적 의례이자 ‘정체성 생산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행지, 이동수단, 숙소 유형, 소비하는 액티비티 선택은 모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럭셔리 리조트를 선택하는가, 로컬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안전·편안함 중심의 자기상과 학습·교류 중심의 자기상이 다르게 드러납니다.
지속가능한 관광 담론에서는 여행을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여행자와 지역,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생태 시스템으로 바라봅니다. 즉, 여행 과정에서 형성되는 ‘나는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자아상은 동시에 특정한 환경·사회적 결과를 낳으며, 다시 그 결과가 다음 여행과 라이프스타일 선택에 피드백을 줍니다.
2-2. 환경 정체성과 친환경 행동
환경심리학과 행동이론 연구는 ‘환경적 자기정체성’이 친환경 행동을 강하게 예측한다고 보고합니다. 자신을 “환경을 아끼는 사람”,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라고 인식하는 개인일수록 쓰레기 분리배출, 재활용,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구매 등에서 더 적극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계획행동이론'을 확장한 연구에서도, 태도·주관적 규범·지각된 행동통제에 더해 ‘자기정체성’과 도덕규범을 포함할 때 친환경 행동 의도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음이 확인됩니다. 자연과의 연결감과 현장 경험이 강할수록,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면화된 당위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이 함께 강화됩니다.
2-3. 슬로우 트래블과 개인 가치
슬로우 트래블을 다룬 최근 연구는 개인의 가치관, 또래의 영향, 문화적 호기심이 느린 여행 의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여줍니다. 특히 ‘여행을 통해 깊이를 추구하는 개인적 가치’가 강할수록, 적은 장소에 오래 머물며 지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여행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지속가능한 여행이 단순한 실천 목록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3.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 태도와 정체성
3-1. 소비 중심 관광객의 특징
여러 연구와 전문 블로그에서는 관광객과 여행자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 관광객은 대체로 짧은 일정에 많은 명소를 방문하며, 패키지 투어·크루즈·올 인클루시브 리조트 등 편의성과 효율성을 중시합니다.
- 체류 중 소비는 국제 체인 호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대형 투어 업체 등 규모가 큰 사업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지역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나 책임감은 상대적으로 낮고, 개인의 경험 극대화가 우선순위가 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여행을 ‘일시적 탈출’로만 이해하게 하고,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정체성 변화와는 분리된 경험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3-2. 여행자로서의 정체성: 관계, 배움, 책임
반면,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여행자는 여행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지역 주민과의 상호작용, 로컬 문화 학습, 언어와 관습 이해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을 “배우는 사람, 손님”으로 위치시킵니다.
- 대중교통 이용, 걷기·자전거 이동, 지역 소규모 숙소와 식당 이용 등을 통해 환경 발자국을 줄이고 지역경제에 직접 기여하고자 합니다.
- 야생동물 착취 체험(코끼리 타기, 동물 쇼 등)이나 환경 파괴적 액티비티를 의식적으로 피하며,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합니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히 ‘좋은 행동’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책임 있는 여행자”,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체성의 기반이 됩니다.
4. 지속가능한 여행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
4-1. 자연과의 연결감과 감정 경험
자연 경관 속에서의 체험은 여행자의 감정과 태도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의 몰입 경험과 감정적 공명은 친환경 행동 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자연과의 연결감을 매개로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감을 증폭시킵니다.
예를 들어, 국립공원이나 보호구역에서 트레킹을 하며 쓰레기·침식·기후변화의 흔적을 직접 목격한 여행자는, 자신의 여행 방식과 일상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훨씬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 “나는 자연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라는 내적 서사는 곧 “나는 평소에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사람”, “나는 비행 횟수를 줄이려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라이프스타일 전환을 촉진합니다.
4-2. 환경적 자기정체성의 강화와 일상 행동 변화
환경적 자기정체성이 강화되면, 개인은 자신의 행동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심리적 동기를 갖게 됩니다. 여행지에서 재사용 병, 대중교통 이용, 로컬 비건·채식 옵션 선택 등을 실천한 사람은, 귀국 후에도 쓰레기 줄이기, 자전거 출퇴근, 중고 거래 등으로 행동 영역을 확장하는 경향이 보고됩니다.
이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실천하는 나”라는 정체성이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한 선택이 여행 중의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적 윤리로 자리 잡을 때, 여행은 일회성 경험을 넘어 지속적인 라이프스타일 교육장이 됩니다.
4-3. 슬로우 트래블과 시간 감각의 재구성
슬로우 트래블은 속도와 효율 대신 깊이와 관계를 중시하는 여행 방식입니다. 한 도시·한 마을에 오래 머물며 걷기, 로컬 시장 이용, 커뮤니티 행사 참여 등을 통해, 여행자는 ‘빨리 많이 보려는 조급함’에서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려는 태도’로 이동하게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개인적 가치와 문화적 호기심이 강한 여행자는 슬로우 트래블 의도가 높고, 이는 다시 여행지 브랜드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일상에서도 과도한 속도 경쟁에 대한 회의를 낳고, 여가·일·관계에 대한 시간 사용 방식을 재조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 달에 한 번 쇼핑 대신, 한 철에 한 번 가까운 숲으로 걷기 여행을 간다”와 같은 선택이 대표적입니다.
5. 관광객에서 여행자로 이동하는 실천 전략
5-1. 선택의 기준 바꾸기: 가격에서 가치로
관광객 모드는 주로 가격·편의·사진 스팟 중심의 선택 기준을 따르기 쉽습니다. 반면 여행자 모드는 ‘내 선택이 누구에게, 무엇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기준을 추가합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유용합니다.
- 이 숙소·업체는 지역사회에 얼마나 환원하고 있는가? (로컬 고용, 지역 생산품 사용 등)
- 이 액티비티는 야생동물·환경·주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가?
- 이 이동 방식보다 더 탄소 배출이 적은 대안은 없는가? (기차·버스·야간열차 등)
이러한 질문을 반복할수록, ‘싸고 편한 여행자’가 아니라 ‘가치와 윤리를 고려하는 여행자’라는 자기 이미지가 공고해집니다.
5-2. 관계 맺기: 로컬과의 상호작용
지속가능한 여행자는 소비자로만 머물지 않고, 손님으로서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 체인 호텔 대신 로컬 게스트하우스·홈스테이를 선택해 주인의 삶과 지역 역사 이야기를 직접 듣기
- 현지어 인사, 시장·카페에서의 짧은 대화, 동네 행사 참여 등을 통해 ‘서로에게 기억에 남는 얼굴’이 되기
이러한 경험은 여행자를 “세계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체화하게 하며, 타문화에 대한 존중·겸손·호기심이라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5-3. 자기 성찰: 여행 기록과 의미 부여
지속가능한 여행은 행동뿐 아니라 의미 부여의 과정과도 연결됩니다. 여행 중·후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이번 여행에서 내가 자랑스럽게 느꼈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왜인가?
- 아쉬웠던 선택이나 환경·로컬에 부담을 준 행동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에는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 이 여행이 내 일상 소비·관계·일하는 방식에 어떤 생각 변화를 가져왔는가?
이러한 자기성찰은 여행 경험을 단순한 추억에서 ‘정체성 서사’로 격상시키며, “나는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여행자”라는 내러티브를 강화합니다.
6. 지속가능한 여행이 만드는 새로운 자기정체성
6-1. ‘환경 시민’으로서의 자아
연구들은 관광객의 친환경 행동이 단지 여행지 보호를 넘어, 일상에서의 '환경 시민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행을 통해 환경문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기후위기·생물다양성 감소 등을 추상적인 뉴스가 아닌 ‘내가 다녀온 장소의 현실’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나는 여행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환경을 고려하는 시민”이라는 자아상이 형성되고, 재생에너지 지지, 환경 관련 정책 참여, 지역 환경운동 후원 등으로까지 행동 영역이 확장되곤 합니다.
6-2. ‘관계적 존재’로서의 자아
지속가능한 여행은 자신을 ‘세계와 연결된 관계적 존재’로 재인식하게 합니다. 여행자가 사용하는 자원, 머무는 공간,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상호의존적 관계망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때, 타인과의 관계 맺기 방식 역시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직장·가정에서도 타인의 문화·배경·환경을 고려해 소통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 가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여행 경험이 개인 정체성뿐 아니라 사회적 태도와 윤리의식까지 확장시키는 효과를 시사합니다.
7. 지속가능한 여행은 태도이자 정체성의 선택
지속가능한 여행은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지키는 ‘착한 행동 캠페인’을 넘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묻는 정체성의 선택입니다. 자연과 지역사회,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여행의 중심 가치로 두는 순간, 우리는 관광객에서 ‘여행자’로 전환되며, 이 전환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의 태도와 소비, 인간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여행은 한 번의 먼 여행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이어지는 생활 방식입니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실 때,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져보신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당신께서는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길 위에 서 계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도움 글·연구 출처]
◎ 학위논문 및 학술논문
- Hanna, P. (2011). 「지속가능한 관광의 소비: 윤리, 정체성, 실천」 (박사학위논문). 브라이튼 대학교 (University of Brighton).
- Cao, X., Wang, L., & Li, X. (2022). 「합리적 계획과 체화된 감정의 이중 경로에 기반한 관광객 친환경 행동의 통합모형」.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 Morrison, A. M. 외 (2023). 「자기정체성의 중요성: 관광객의 쓰레기 분리배출 의도를 설명하는 확장된 계획행동이론(Extended TPB)」.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 Pearce, P. L. (2012). 「관광과 정체성 관련 동기: 왜 나는 여기 있으며, 거기에는 없는가?」.『국제관광연구저널 (International Journal of Tourism Research)』.
- 「슬로우 트래블 의도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사회적·문화적 요인: 케다르나스 순례 관광객 사례」. 슬로우 트래블 의도에 관한 학술 논문.
◎ 온라인 칼럼 및 블로그
- 「관광객 vs 여행자: 그 차이는 무엇인가?」 — 책임 있는 여행자와 관광객의 태도 차이를 해설한 온라인 칼럼.
- 「관광객과 여행자는 어떻게 다른가?」 — 지속가능한 여행자의 특징을 정리한 블로그·칼럼.
- 「지속가능한 관광: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란?」 — 지속가능관광 관점에서의 여행자와 관광객 비교 해설 글.
- 「혼자 여행과 자기발견: 내가 혼자일 때 나는 누구인가?」 — 『The Travel Psychologist』, 혼자 여행을 통한 자기정체성 탐구에 관한 심리학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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