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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지에서 느낀 소속감과 이방인감: 경계인으로 사는 법을 배우다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2. 17.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소속감과 이방인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 동시에 어디에 속하지 않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이 글에서는 여행자를 ‘경계인’으로 바라보며, 여행지에서의 소속감·이방인감이 어떻게 공존하고, 그것이 삶의 태도와 정체성에 어떤 통찰을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여행자는 왜 늘 ‘애매한’ 존재인가

여행자는 거주민도, 완전한 외부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관광학과 사회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리미널리티(liminality, 경계 상태)’로 설명하며, 일상과 비일상, 집과 타지 사이의 문턱에 서 있는 경험으로 봅니다. 이때 여행자는 일상적 지위와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지만, 새로운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지는 않은 채, 소속감과 이방인감을 동시에 경험하는 특수한 심리 상태를 겪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행지에서 느끼는 소속감과 이방인감의 심리·사회적 의미를 설명
  • 여행자를 ‘경계인’으로 이해하는 이론적 배경을 정리
  • 실제 여행 경험에서 나타나는 경계인의 감각을 유형화
  • 이러한 감정 경험을 일상 삶에서 ‘경계인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학습 과정으로 해석

 

2. 이론적 배경: 소속감, 이방인, 그리고 경계인

2-1. 소속감과 장소 정체성

소속감은 “나는 여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확신이며, 특정 장소·집단과의 정서적 유대,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 함께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구성됩니다. 지역 연구에서는 주민과 지역사회 간의 상호작용, 정서적 유대, 공동체 경험이 ‘지역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여행자의 경우 이 소속감은 영구적 거주가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경험과 정서적 교류를 통해 일시적으로 형성됩니다.

2-2. 이방인과 타자성

사회학자 지멜은 ‘이방인’을 “멀리서 왔지만 여기 머무는 자”, 즉 공간적으로는 가까이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거리감을 유지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이방인은 공동체의 규범과 역사에 완전히 포함되지 못한 채, 항상 약간의 긴장과 의심, 혹은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여행자는 바로 이 ‘이방인성’을 거의 필연적으로 지니며, 언어·문화·관계망에서 주변적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동시에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으로 경험됩니다.

2-3. 리미널리티와 관광: 경계 상태의 여행자

터너(Turner)의 리미널리티 개념은 원래 의례 과정에서 기존 지위가 해체되고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기 전, 중간 단계의 상태를 뜻합니다. 이후 관광 연구는 이를 확장해, 여행자를 일상과 비일상 사이, 집과 타지 사이를 오가는 ‘경계 존재’로 설명합니다.​

  • 여행자는 일상적 역할(직장인, 부모, 학생)을 잠시 내려놓고 ‘관광객’이라는 느슨한 정체성을 입습니다.
  • ​동시에 현지 사회의 제도·관계망 안에 편입되지 않은 채, 책임과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머뭅니다.

이러한 리미널 상태에서 사람들은 규범에서 다소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평소와 다른 정체성·관계를 실험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여행이 자아 성찰과 재구성의 계기가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설명됩니다.

 

3. 여행지에서의 소속감: 잠깐이지만 진짜 같았던 순간들

3-1. 감성적 유대와 ‘임시 거주자’의 감각

연구에 따르면 지역사회와의 정서적 교류가 깊을수록 그 장소에 대한 친밀감과 애착이 높아지고, 이는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자의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경험들이 소속감을 강화합니다.

  • 단골 카페, 시장, 동네 산책로가 생기면서 ‘내 루틴’이 자리 잡는 순간
  • 상인이나 이웃이 얼굴을 기억해 인사를 건네는 경험
  • 지역 축제·모임에 초대되어 주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

이때 여행자는 관광객이기 이전에, 잠시 이곳에 몸을 두고 일상을 나누는 ‘임시 거주자’처럼 느끼게 되며, 장소에 대한 애착과 책임의식도 부분적으로 함께 생겨납니다.

3-2. 스토리텔링과 관광지의 정체성에 동참하기

관광 스토리텔링은 지역의 역사·문화·상징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어, 방문객이 그 맥락 속에서 장소를 이해하고 감정 이입하도록 돕습니다.​

  • 잘 설계된 스토리텔링은 관광객에게 “이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부여합니다.​
  • 이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을 함께 지지하고 재현하는 참여자로 자신을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 장인과 함께 공예를 체험하거나, 지역의 아픈 역사 현장을 해설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은 여행자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나도 이 기억의 일부”라는 내적 책임감을 형성합니다. 이는 일시적 방문에도 불구하고 깊은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심리적 장치입니다.

3-3. 여행자 커뮤니타스: 함께인 낯선 이들

터너는 리미널 상태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계가 약화되고 평등한 유대가 형성되는 현상을 ‘커뮤니타스’라고 불렀습니다. 여행에서도 국적·직업·나이가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호스텔, 같은 투어, 같은 이동 수단에서 우연히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자주 보고됩니다.

  • 이 관계는 짧고 일시적이지만, 서로의 일상적 배경과 역할을 모르는 상태에서 오히려 솔직한 자기 개방이 쉽게 일어납니다.​
  • 공통된 목적(여행, 탐색, 휴식)과 비슷한 ‘경계 상태’에 있다는 공감대가 강렬한 동료 의식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형성된 여행자 커뮤니타스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지만, 지금 여기 함께 떠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특수한 소속감의 형태를 보여 줍니다.

 

4. 여행지에서의 이방인감: 편입되지 못한 채 머무는 자

4-1. 언어·문화의 벽과 일상적 주변성

'이방인감'은 “나는 여기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각과 함께, 경계 바깥에 서 있다는 감정적 거리에서 비롯됩니다. 여행지에서 이방인감은 특히 다음 상황에서 두드러집니다.

  • 언어가 통하지 않아 미묘한 뉘앙스·유머·암묵적 규칙을 이해하지 못할 때
  • 현지인들끼리만 공유하는 기억·관습·관계망 속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고 느낄 때
  •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업 공간에만 머무르며 ‘겉핥기’만 한다고 느낄 때

사회학 연구는 이런 주변성이 자존감과 소속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낯설게 보기’가 자기 성찰과 비판적 거리두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4-2. 관광지의 소비 구조 속에서의 대상화

관광지는 종종 관광객을 ‘고객’ 혹은 ‘소비자’로만 대하며, 이는 진짜 관계 형성보다는 기능적 상호작용에 머물게 만듭니다.

  • 가격이 관광객에게만 다르게 매겨지거나, 지나치게 관광객 중심으로 상업화된 공간에 있을 때 “나는 여기에서 환영받는 구성원이라기보다, 타깃 소비자일 뿐”이라는 이방인감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 온라인 플랫폼 기반 체험(예: 숙박·투어)의 확산은 주민 호스트와 게스트 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지만, 여전히 계약·평점·리뷰 시스템이 관계의 기반이 되면서 ‘정말로 이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깁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행자는 환대와 배제를 동시에 경험하며, “환대받지만 완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이방인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4-3. 이동성과 애매한 거주: 머무름과 떠남의 긴장

오늘날의 여행자는 높은 이동성을 지니지만, 그 이동성이 곧 소속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이동은 영속적인 ‘경계성’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한 곳에 충분히 머물기 전에 떠나야 하는 일정은 깊은 관계 맺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 어느 곳에서나 ‘잠시 있다 떠날 사람’으로 인식될 때, 공동체는 여행자에게 중요한 정보나 깊은 신뢰를 나누는 데 주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나는 어디에 진짜로 속할 수 있는가”, “계속 이동하는 삶은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며, 여행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심화된 정체성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5. 경계인으로 사는 법: 여행이 가르쳐 주는 정체성의 기술

5-1. 경계 경험과 정체성 재구성

경계(국경·문화·언어·계급)를 넘나드는 경험은 자기 정체성을 다시 짜는 과정과 깊이 연결됩니다. 이주·난민 연구에서는, 반복적인 경계 횡단과 이방인 경험이 기존의 단일한 정체성을 해체하고, 다중적·혼종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한다고 분석합니다. 여행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직장인이다”라는 단순한 자기 정의가,
  • “나는 여러 곳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라는 인식으로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경계 경험은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낯설고 불편한 이방인감은 불안과 고독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나는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5-2.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기’를 받아들이기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하려 애쓰기보다, 여러 세계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여행은 이 태도를 훈련하는 실험장의 역할을 합니다.

  • 소속감이 생기는 순간을 충분히 누리되, 그것이 영원히 유지되지 않을 것을 알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 이방인감이 밀려올 때, “여기와 나는 달라서 의미 있다”는 시각으로 전환해, 비교와 성찰의 기회로 삼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는 단 하나의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여러 경계를 잇는 다리”라는 자기 이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행자가 이렇게 경계성을 내면화하면, 귀국 후에도 하나의 조직·국가·관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과 소속을 동시에 관리하는 능력이 강화됩니다.

5-3. 일상으로 가져오는 경계인의 감수성

여행에서 배운 경계인의 감각은 일상에서도 유효합니다.

  • 회사·가족·지역사회에서 ‘소수자’ 혹은 ‘낯선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고, 배제 구조를 더 잘 인지하게 됩니다.
  • 한 공동체 안에 다양한 목소리와 배경이 공존할 수 있도록, 완전한 동질성을 강요하기보다 느슨한 연결을 허용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습니다.
  • 스스로도 어디엔가 완전히 맞지 않는 느낌이 들 때, 그것을 실패나 결함이 아니라 “경계를 감지하는 능력”으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여행에서 겪은 소속감과 이방인감의 교차는, 일상 속에서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의 다중 정체성을 수용하는 ‘생활 기술’로 전환됩니다.

 

6. 여행지의 문턱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여행지에서의 소속감과 이방인감은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아니라, 경계 위에 선 여행자의 필연적인 이중 경험입니다. 소속감은 장소·사람·이야기와의 정서적 유대를 통해 “나는 여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고, 이방인감은 그 연결이 항상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기 성찰을 촉발합니다.

 

관광과 이동성이 높아진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물리적·심리적 경계 위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여행은 이러한 시대적 조건을 견디는 연습장이자, 경계인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학교와 같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안착하지 못한 감각을 두려워하기보다, 여러 곳과 느슨하게 연결된 존재로서 자신을 인정할 때, 소속감과 이방인감은 서로를 위협하는 감정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와 더 다층적인 자아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도움 글·연구 출처]

  • UKEssays, 「Tourism as a Liminal State Sociology Essay」, 관광에서의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 개념 논의​
  • Reading the stranger in the age of social media, 낯선 이와 이동성, 소속과 배제의 공존에 대한 논의​
  • 『탈북청소년의 경계 경험과 정체성 재구성』, 통일연구원, 경계 경험과 정체성 재구성에 대한 심층 연구​
  • 「지역 정체성이 지역 이미지 형성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 지역 정체성·정서적 유대·이미지 형성과 소속감 관련 분석​
  • 「지역문화자산을 활용한 관광스토리텔링이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 관광 스토리텔링과 진정성·행동의도·지역 정체성 논의​
  • 「온라인 플랫폼 일상 체험 관광에서 주체와 장소성 형성」, 에어비앤비 체험과 로컬 정체성·관계 형성 분석​
  • 국내체류동포 실태조사, 차별 경험과 소속감·자존감 간 관계에 대한 통계 분석​
  • “‘Stranger Views’: Researching Marginality and (Non)Belonging”, 이방인성, 주변성, 비소속 경험을 다룬 최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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