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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완화, 의료 사각지대는 오히려 커지는가

by 구름따라 방랑자 2026. 10. 1.

"규제를 풀면 의료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지는 사람과, 같은 규제 완화 속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사람이 동시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규제 완화의 찬반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떤 문턱을 낮추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 지금 무엇이 얼마나 풀렸는가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완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는 비대면진료입니다. 2020년 2월 코로나19 대응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2025년 2월까지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분석에 따르면 이 기간 비대면진료를 시행한 의료기관은 약 2만 3천 곳, 이용 환자는 약 492만 명에 달했습니다.

 

제도의 방향은 2025년 12월에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입니다. 2010년 18대 국회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된 지 15년 만이었습니다. 개정안에는 대면진료 원칙,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재진환자 중심, 전담기관 금지라는 4대 원칙이 담겼고, 공포 1년 뒤부터 시행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본격 시행을 눈앞에 둔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이 법은 '규제 완화'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조건부 허용에 가깝습니다.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두고 비대면진료를 보완 수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규제 완화가 사각지대를 키우는가"라는 질문은 "어떤 조건으로 풀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2. 통계가 말해 주는 것: 누가 쓰고 있는가

시범사업 평가 자료에서 제가 주목한 대목은 세 가지입니다.

  • 첫째, 재진 중심 -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시기 재진진료는 전체 비대면진료의 약 79% 수준이었습니다. 이미 대면진료로 관계를 맺은 환자가 주된 이용자라는 뜻입니다.
  • 둘째, 경증·만성질환 - 주요 상병은 고혈압, 당뇨병, 감기, 비염 등이었습니다. 응급 대응이나 중증 질환의 초기 발견과는 거리가 있는 영역입니다.
  • 셋째, 제도 설계가 바뀔 때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흔들림 - 2023년 6월 한시적 허용에서 시범사업으로 전환되자 월 이용자 수가 25만 4천여 명에서 12만 2천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진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장애인 환자는 1만 4천여 명에서 8천 7백여 명으로 약 38% 감소했습니다. 복지부도 이용 대상 범위가 축소되면서 현장 혼선이 커진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비대면진료는 이용 가능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편리하지만,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닫히는 구조였습니다.

 

3. 핵심 논지: 사각지대는 사라지지 않고 '이동'합니다

전통적인 의료 사각지대의 문턱은 '거리'였습니다. 병원이 멀고, 교통이 불편하고, 이동할 몸이 불편한 사람이 배제되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 문턱을 분명히 낮춥니다. 그런데 문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의 문턱이 낮아진 자리에 기기, 인증, 문해력, 이력이라는 새로운 문턱이 들어섭니다.

  • 스마트폰과 안정적인 통신 환경이 있어야 하고
  • 본인 인증과 앱 설치, 결제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 증상을 스스로 설명하고 처방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 대개는 이미 해당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이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새 문턱을 넘기 쉬운 사람과 기존 문턱에 걸려 있던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원거리에 사는 고령 1인 가구는 병원이 멀어서 배제되었는데, 기기와 인증 앞에서 다시 한 번 배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도심에 살며 병원 접근성이 좋은 청장년은 이미 충분한 접근성 위에 편의를 하나 더 얻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이용량은 늘지만, 그 혜택의 분포는 기존 격차를 따라 흐릅니다.

 

이 관점에서 "규제 완화가 사각지대를 키우는가"에 대한 제 답은 이렇습니다. 규제 완화 자체가 사각지대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각지대를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이용자 수와 진료 건수가 늘어나는 동안 통계상 접근성은 좋아 보이지만, 이용하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문턱이 이동하는 세 가지 경로

4-1. 수요의 선별: 편한 사람이 먼저 씁니다

새로운 채널이 열리면 그 채널에 익숙한 사람이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이용합니다. 이는 의료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공공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전환할 때마다 반복되어 온 패턴입니다. 재진·경증·만성질환 위주의 이용 구조는 이 선별이 이미 진행 중임을 보여 줍니다. 제가 앞서 다룬 '예측-개입 격차'와 같은 맥락입니다. 기술이 대상자를 더 잘 찾아내는 것과 그 대상자에게 실제로 서비스가 도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4-2. 공급의 이동: 수익성 있는 영역으로 쏠립니다

규제가 풀리면 공급자는 수익성이 높고 운영이 쉬운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비대면으로 효율적으로 처리되는 진료, 반복 처방이 가능한 진료, 비급여 상품과 결합하기 쉬운 진료가 그렇습니다. 2025년 복지부 자문단 논의에서 비급여 의약품 모니터링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점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읽힙니다.

 

2025년 의료법 개정안이 비대면 전담기관을 금지하고 마약류 의약품 처방을 막은 것은 이 공급 쏠림을 일부 차단하려는 장치입니다. 다만 이 장치는 '나쁜 공급'을 막을 뿐, '필요한 곳에 공급을 보내는' 기능은 하지 못합니다. 규제가 막는 것과 제도가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4-3. 대면 인프라의 공동화: 보완이 대체가 될 위험

가장 조심스럽게 봐야 할 경로입니다. 법은 비대면진료를 대면진료의 보완 수단으로 명시했지만, 현장에서는 보완이 대체로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의료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 "비대면진료가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순간, 지역 의료기관 확충이라는 본래 과제가 뒷전으로 밀립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 다룬 필수의료 공백 문제에서도 확인했듯이, 지역 의료 공백은 재정 지원이나 기술만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디지털은 그 공백을 메우는 도구이지, 공백이 있어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5. 그래도 규제 완화가 필요한 이유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규제 완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시범사업 기간 비대면진료의 약 15%가 휴일·야간에 이루어졌다는 자료(대면진료는 약 8%)는 비대면진료가 대면 의료가 닿지 않는 시간대를 실제로 채웠음을 보여 줍니다. 퇴근 후에야 진료받을 수 있는 노동자, 아이를 두고 이동하기 어려운 양육자,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자에게 이 채널은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규제를 아예 풀지 않았을 때의 비용도 있습니다. 법적 근거 없는 시범사업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이용자를 흔들었고, 앞서 본 2023년 6월의 급감이 그 사례입니다. 불확실한 제도는 취약계층에게 가장 가혹합니다. 제도화는 그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풀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닙니다. 풀린 자리에서 누가 배제되는지를 측정하고 보정할 수 있느냐입니다.

 

6. 사각지대를 키우지 않는 설계 조건

  • 첫째, 성과 지표를 '이용 건수'에서 '미이용자 추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이용자가 몇 명 늘었는지가 아니라, 의료취약지 고령자·장애인·디지털 비친화 계층 중 얼마나 이용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집계해야 합니다. 측정하지 않는 사각지대는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 둘째, 디지털 접근을 돕는 중간 매개를 제도에 넣어야 합니다. 보건소, 약국, 복지관, 방문간호처럼 이미 지역에 있는 접점이 기기 사용과 인증을 돕는 구조입니다. 이는 재정 측면에서 별도의 지출 항목이 필요한 일이며, 제가 이 블로그에서 계속 다뤄 온 재원조달의 세 축(세입, 사회보험료, 재정지출) 가운데 재정지출 축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수가 체계 안에 이 매개 기능을 반영할 것인지, 일반재정으로 지원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규제는 풀렸는데 돌봄은 아무도 맡지 않는 공백이 생깁니다.
  • 셋째, 예외 조항은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섬·벽지 거주자, 장애인, 거동 불편 고령자처럼 초진이 불가피한 계층에 대한 예외는 제도 전환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2023년의 경험이 보여 주듯, 예외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은 가장 취약한 이용자입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Q1. 비대면진료는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나요?

  • 부분적으로 그렇습니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은 줄이지만, 기기·인증·문해력이라는 새 문턱이 생기기 때문에 대상에 따라 효과가 크게 갈립니다.

Q2. 2025년 개정 의료법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 대면진료 원칙, 의원급 중심, 재진환자 중심, 비대면 전담기관 금지의 4대 원칙입니다. 비대면진료를 대면진료의 보완 수단으로 규정하고 마약류 처방을 금지한 점도 특징입니다.

Q3. 규제 완화가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 미이용자를 측정하지 않고, 지역 대면 인프라 확충을 미룬 채 디지털 채널로 대체하려 할 때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완화는 사각지대를 키우는 정책도, 해소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사각지대의 위치를 옮기는 정책입니다. 그 이동을 읽어 내고 새로 생긴 문턱 앞에 사람을 세워 두지 않는 일, 그것이 제도화 이후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 보건복지부 보도(2025.12, 국회 본회의 통과): 비대면진료 의료법 개정안은 2010년 최초 논의 이후 15년 만에 통과했으며, 4대 원칙(대면진료 원칙·의원급 중심·재진 중심·전담기관 금지)과 마약류 처방 금지를 담았고, 공포 1년 후 시행됩니다.
  • 보건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평가 자문단 회의(2025.8): 시범사업 기간 약 492만 명이 이용했고, 재진진료가 약 79~80%, 65세 이상 이용 비율이 약 30%, 휴일·야간 비율이 약 15%였으며, 주요 상병은 고혈압·당뇨·감기·비염이었습니다. 비급여 의약품 모니터링 필요성도 제기되었습니다.
  • 국회 보건복지위 이종성 의원실 제시 자료(2023.10): 한시적 허용에서 시범사업으로 전환된 직후 월 이용자가 약 25만 5천 명에서 12만 2천 명으로 줄었고, 장애인 환자는 약 38% 감소했습니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2023.8, 디지털 보건의료 특집): 고령인구의 지역 분포와 디지털 건강관리서비스의 취약계층 대상 운영 현황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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