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는 흔히 "나에게 꼭 맞는 치료"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나를 정밀하게 알려면 나와 닮은 사람들의 데이터가 먼저 쌓여 있어야 합니다. 이번 글은 그 전제가 얼마나 고르게 충족되고 있는지, 충족되지 않을 때 어떤 불평등이 생기는지를 따져봅니다.
1. 정밀의료의 숨은 전제: 비교할 '참조 집단'
유전자 검사 결과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어떤 변이가 위험한지는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서 판정합니다. 이미 연구된 집단의 데이터가 판정의 기준선이 되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정밀의료의 정밀도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이 참조 데이터의 두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정밀의료의 불평등을 논할 때는 "누가 첨단 검사를 받을 수 있는가"보다 한 단계 앞선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선에 누가 들어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정밀도의 계층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밀도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기술적 속성이 아니라, 데이터에 대표된 정도와 검사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 결과를 치료로 연결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배분되는 자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격차는 세 겹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참조의 격차, 접근의 격차, 전환의 격차입니다.
2. 첫 번째 격차: 참조의 격차, 데이터에 없는 사람들
유전체 연구가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왔는지는 수치로 확인됩니다.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 참여자 가운데 유럽계 비중은 2009년 약 96%였습니다. 2016년 분석에서는 81% 안팎으로 내려갔고, 2021년 6월 기준 분석에서는 다시 86%로 나타났습니다. 분석 방법과 기간에 따라 80%대 중후반에서 90%대 초반까지 편차가 있지만, 방향은 일관됩니다. 10여 년 동안 다양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연구 집단이 소수 국가에 몰려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17년까지의 GWAS 발견 중 72%가 미국, 영국, 아이슬란드 세 나라 참가자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동아시아계는 5% 안팎에 머무르고, 아프리카계와 중남미계, 원주민 집단은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것이 임상에서 왜 문제일까요? 질병 위험을 여러 유전 변이로 합산해 예측하는 다유전자 위험점수(PRS)의 정확도가 집단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2019년 Nature Genetics에 실린 연구는 유럽계 데이터로 만든 점수의 예측력이 동아시아계에서 약 2배, 아프리카계에서 약 4.5배 낮아진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점수가 그대로 임상에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요? 데이터가 풍부한 집단은 더 정확한 예측을 받고, 그렇지 않은 집단은 덜 정확한 예측을 받습니다. 의학이 정밀해질수록 집단 간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불확실성의 분배'입니다. 참조 데이터가 두꺼운 집단은 검사에서 "위험하다" 또는 "위험하지 않다"는 명확한 답을 받습니다. 데이터가 얇은 집단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변이(VUS)" 같은 판정 보류 결과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비용을 내고 같은 검사를 받았는데, 한쪽은 답을 얻고 다른 쪽은 불확실성을 받아 드는 것입니다. 정보의 불평등이 곧 건강 불평등의 씨앗이 됩니다.
3. 두 번째 격차: 접근의 격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참조 데이터가 완벽하다고 가정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검사 자체에 누가 접근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일부 유전성 질환 검사와 항암 표적치료 관련 검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적용 범위는 계속 바뀌고 있고, 상당수의 유전체 검사는 여전히 환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합니다.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검사는 시장에서 구매하는 상품에 가깝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70%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비급여의 자기창설 구조에서 찾아본 적이 있는데, 유전체 검사 영역에서는 그 구조가 가장 앞선 기술에서 처음부터 재현되고 있습니다. 혁신 기술은 늘 비급여로 시작하고, 그 순간부터 지불 능력이 접근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비용만이 아닙니다. 검사 결과를 의미 있게 해석해 줄 유전상담 인력과 임상유전 전문가는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필수의료 공백이 지역에서 먼저 나타나듯, 정밀의료의 해석 인프라도 지역에서 먼저 비어 있습니다. 결과지를 받아도 그것을 읽어 줄 사람이 없다면 검사는 반쪽짜리 서비스에 그칩니다.
4. 세 번째 격차: 전환의 격차, 결과가 치료와 돌봄으로 이어지는가
유전정보가 건강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검사 이후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과 해석, 후속 검진, 예방적 관리, 그리고 표적치료제나 임상시험 접근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 사슬의 어느 고리에서든 사회경제적 지위와 거주지가 작동합니다. 임상시험은 대형병원에 몰려 있고, 후속 검진은 시간과 이동 비용을 요구하며, 가족 단위의 유전 위험 관리는 정보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건강 문해력을 필요로 합니다.
유전정보 차별에 대한 두려움도 전환을 가로막습니다. 검사 결과가 보험 가입이나 고용에서 불리하게 쓰일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검사를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법제에도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는지는 별도의 점검이 필요합니다. 검사를 받는 것이 오히려 위험이 되는 구조라면, 정밀의료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5. 국경 안의 참조 격차: 한국의 국가 바이오빅데이터
한국은 이 문제에 대응하는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이 함께 추진하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은 2028년까지 약 77만 명, 2032년까지 100만 명 규모의 한국인 유전체·임상·생활습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동아시아계, 그중에서도 한국인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사업이고, 2026년 하반기에는 첫 데이터 개방도 예고되어 있습니다. 방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를 더 짚고 싶습니다. 이 사업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동의를 기반으로 하고, 모집은 병원과 건강검진 체계를 거점으로 이루어집니다. 자발적 참여 모델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만, 대표성 측면에서는 조심스럽게 봐야 합니다. 참여할 시간과 이동 여건이 있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추정이며, 실제 참여자 구성은 공개되는 통계로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인 100만 명'이라는 숫자 안에 이주배경 주민, 장애인, 도서·농촌 거주자, 고령 저소득층이 얼마나 포함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국인 평균에 맞춰 정밀해진 의학이 한국 안의 소수 집단에게는 다시 덜 정밀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참조 격차가 국경 안에서 한 번 더 재현되는 셈입니다. 목표 인원이라는 건수 지표만으로 사업을 평가하면, 임대주택 공급 호수는 늘었는데 빈집이 남는 문제와 같은 구조적 착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6.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세 가지 제안
세 겹의 격차에 대응해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합니다.
- 첫째, 데이터 단계에서는 대표성을 성과 지표에 넣어야 합니다. 참여자 수와 함께 연령, 소득, 지역, 이주 배경, 장애 여부별 구성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과소대표 집단에는 목표 비율과 별도의 모집 전략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는 재정지출의 평가 기준을 건수에서 구성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 둘째, 접근 단계에서는 검사 급여화와 해석 인프라를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근거가 확립된 검사를 건강보험 급여로 편입할 때 유전상담과 결과 해석에 대한 수가를 같이 설계하지 않으면, 급여는 되는데 읽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는 사회보험의 급여 결정 기준을 '검사' 단위에서 '검사부터 해석까지의 패키지' 단위로 넓히자는 제안입니다.
- 셋째, 환원 단계에서는 공공 데이터로 만든 성과가 공공에 돌아오는 조건을 미리 정해야 합니다. 국민이 기증한 데이터로 개발된 진단법과 치료제가 높은 가격으로만 유통된다면 데이터를 낸 사람이 다시 접근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데이터 활용 수익의 일부 환수나 접근성 조건 부여를 논의할 시점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 제도 설계 이전의 문제 제기 수준이라고 밝혀 두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정밀의료란 무엇인가요?
- 유전체 정보, 임상 정보, 생활습관 정보를 통합해 개인별 특성에 맞는 예방·진단·치료를 제공하려는 의료 접근입니다.
Q2. 유전자 검사 결과가 집단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나요?
- 네. 변이의 위험도 판정은 기존 참조 데이터에 의존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적은 집단에서는 예측 정확도가 낮거나 판정이 보류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 있습니다.
Q3.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 검사를 받기 전에 검사의 목적과 한계, 결과 해석을 도와줄 상담 가능 여부, 정보 활용 범위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업적 DTC 검사의 결과를 의학적 진단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정밀의료의 약속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정밀함이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약속은 이미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몰아주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속도가 빠를수록 분배의 설계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누구의 데이터로 만들고, 누가 받을 수 있고, 받은 뒤에는 무엇이 보장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정밀의료는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불평등을 정교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Popejoy & Fullerton (2016), "Genomics is failing on diversity," Nature: GWAS 참여자의 유럽계 비중이 2009년 약 96%에서 2016년 81%로 낮아졌으나, 비유럽계 대표성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 Fatumo et al. (2022), Nature Medicine: 2021년 6월 기준 유럽계가 GWAS의 86%를 차지한다고 보고하며, 유전체 연구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 Martin et al. (2019), "Clinical use of current polygenic risk scores may exacerbate health disparities," Nature Genetics: 유럽계 데이터 기반 다유전자 위험점수의 예측력이 비유럽계에서 크게 떨어지며, 임상 도입 시 건강 격차를 키울 수 있음을 분석했습니다.
- NHGRI-EBI GWAS Catalog 분석 논문(PMC6323052): 2005~2018년 데이터에서 유럽계 비중이 높고, 2017년 기준 발견의 72%가 미국·영국·아이슬란드 참가자에서 나왔다고 정리했습니다.
- "Ethnic, gender and other sociodemographic biases in genome-wide association studies for the most burdensome non-communicable diseases: 2005–2022" (PMC9851743): 주요 비감염성 질환 GWAS의 약 91%가 유럽계 대상이며 동아시아계는 약 5%라고 분석했습니다.
-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관련 보도(메디칼타임즈, 메디게이트뉴스, 데일리팜 등): 4개 부처 공동 추진, 2028년 약 77만 명·2032년 100만 명 구축 목표, 자발적 참여·동의 기반 모집, 2026년 하반기 데이터 개방 예정 등을 다뤘습니다.
- 한양대학교병원 공지(2025.2.13): 일반국민 참여자 모집이 건강검진 대상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참여 시 시간·이동 보상이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 금지 규정을 담고 있어, 실효성 논의의 법적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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